냉동고에 12년… 기구한 장례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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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시설 30대女 패혈증 숨지자… 원장 “의료사고” 시신 인수 거부
대책위 중재 나서 23일 장례식, 안치료 2억여원… 병원 “소송낼것”

숨진 이후 법적 친권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해 12년간 영안실 냉동고에 방치돼 있던 한 장애인의 ‘기구한 장례식’이 마침내 치러진다.

강원 원주시 미신고 장애인 시설인 ‘귀래 사랑의 집’에서 생활하던 A 씨(사망 당시 33세·여)는 원주의료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2002년 패혈증으로 숨졌다. 그러나 A 씨를 입양했던 귀래 사랑의 집 전 운영자 장모 원장(69)은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며 시신을 인수하지 않았다. 이후 A 씨의 시신은 영안실에 안치돼 있었고 12년 동안의 안치 비용만 2억5800여만 원에 이른다.

A 씨의 장례식은 ‘귀래 사랑의 집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가 적극 추진했고 원주의료원이 이에 동의해 이뤄졌다. 대책위는 23일 오전 7시경 원주의료원에서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뒤 오후 3시경 서울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서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A 씨의 시신은 화장해 수원의 봉안당에 안치할 예정”이라며 “억울하게 숨진 고인의 넋이 다소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주의료원은 그동안 A 씨의 시신 처리를 위해 노력했지만 법적 친권자인 장 전 원장의 허락이 없어 임의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장 전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법원은 조정을 통해 ‘장 전 원장과 협의해 시신을 처리하라’고 결정해 12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춘천지법 원주지원이 1심 판결을 통해 장 전 원장의 사체유기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원주의료원이 임의대로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원주의료원 관계자는 “비록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고인을 위해 장례를 치르는 게 맞다고 판단해 시민단체 등과 협의해 시신을 인도하기로 했다”며 “안치 비용을 받기 위해 장 전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 전 원장은 수년간 장애인들을 학대한 것은 물론이고 사기와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8일 항소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원주=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장애인#장례식#폐혈증#의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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