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왕따 여중생 신고 받은 경찰, 도배지 사러간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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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영구임대 아파트 사는 세자매, 따돌림에 입닫아 경찰이 심리치료 주선
곰팡이 슨 집 찾아가 새단장도 도와

광주 북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청소년계 학교전담 경찰관들이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2일 김세영 양 등 세자매의 비좁은 집에서 작업할 도배와 장판을 고르고 있다. 광주 북부경찰서 제공
광주 북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청소년계 학교전담 경찰관들이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2일 김세영 양 등 세자매의 비좁은 집에서 작업할 도배와 장판을 고르고 있다. 광주 북부경찰서 제공
3월 21일 김세영(가명·13·중 2) 양은 광주지방경찰청 학교폭력신고전화 117에 “후배들이 놀리며 툭툭 건드린다”고 신고했다. 117로부터 연락을 받은 광주 북부경찰서 청소년계 최길식 경장(31)이 22일 김 양과 전화상담을 했다. 김 양은 이후 한 달간 최 경장에게 8차례나 전화를 먼저 걸어 학교 폭력 등에 대해 상담을 했다.

최 경장은 상담 과정에서 김 양이 2010년 간질로 교실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진 뒤 친구들로부터 ‘찐따(왕따를 의미)’로 불리며 따돌림을 당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양은 친구나 후배들과 친해지려 애썼지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최 경장은 한 달 넘게 이어진 상담으로 김 양의 가정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양의 어머니는 10년 전 암으로 숨졌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다. 김 양과 언니(14·중 3)와 여동생(11·초 5) 등 세 자매는 대화할 사람이 없었다. 김 양과 언니는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아 사회성과 학업성적도 떨어지는 상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 경장은 5월 11일 김 양 자매를 이룸심리발달센터로 데려갔다. 최 경장 등 학교 전담 경찰관 6명이 번갈아 가며 김 양 자매를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까지 데려가 심리치료를 받게 한 뒤 집에 데려다 줬다. 심리치료를 한 지 한 달이 흘렀을 때 김 양 자매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김 양 자매는 “아버지가 술을 자주 마신다. 동생이 청소를 잘 안 한다”는 등 속내를 털어놨다.

최 경장 등은 최근 김 양의 집을 방문한 뒤 깜짝 놀랐다. 영구임대아파트 37m²(약 12평) 집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벽지·장판은 곰팡이가 피어 폐가를 연상케 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학부모가 2일 도배와 장판 비용을 후원해 최근 집을 깔끔하게 단장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경찰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세 자매의 방이 깨끗이 변한 것을 보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공창곤 북부서 청소년계장은 8일 “학교폭력을 파악하다 만난 김 양 자매에게 작은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세 자매의 튼튼한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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