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학선거서 투표함 바꿔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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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총학회장-부회장이 주도… 집행부 출신 당선 위해 개입
대학측 “제적-고소도 검토”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총학생회 측이 집행부 출신 후보를 차기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독재정권 시절에나 벌어질 일이 대학 선거에서 벌어졌다”라며 기막히다는 반응이다.

21일 치러진 부산 모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현 총학 집행부 출신이 정회장 후보로 출마한 A팀이 B, C팀을 누르고 당선됐다. 재적 인원(8309명) 가운데 3382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A팀은 1625표(48%)를 얻었다. B, C팀을 합한 표(1580표)보다 많은 것. 세 팀 모두 비운동권 후보들이 출마했다. 선거관리위원장은 부총학생회장이 맡았고 총학 집행부 몇 명도 선거관리에 참여했다.

투표함 바꿔치기는 낙선 후보 측에서 “투표 과정의 공정성이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선거 운동 기간 여론이 불리했던 A팀이 과반에 가까운 표로 압도적으로 당선됐기 때문. 투표를 마친 한 학생이 촬영한 ‘인증 샷’에 나온 투표함과 대학신문사가 개표소에서 찍은 투표함이 미세하게 다르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학교 측은 학생들과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섰으며 그 결과 해당 투표함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선관위가 승용차로 해당 투표함을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건물에 10분가량 머문 뒤 개표소로 이동하는 장면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도 확보했다. 총학생회가 부산 남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함을 빌릴 때 투표함 한 개를 추가로 빌려 선거 다음 날 반납한 것도 확인했다.

조사 결과 투표함 바꿔치기에는 현 총학생회장과 선거관리위원장인 부총학생회장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선거 전날 A팀에 미리 기표한 투표지 등 1600표를 담은 투표함을 학교 다른 건물에 숨겨 뒀다가 선거 당일 투표함을 옮기면서 바꿔치기했다”라며 “학생들이 기표한 D투표소 투표지는 개표 다음 날 바닷가 공원에 버렸다”라고 진술했다. 또 “아끼는 후배들의 당선이 힘들 것 같아 동정심에서 부정선거를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집행부 출신 후배에게 총학생회장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사건을 기획하고 후배들에게 개입을 지시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이들 외에 선거 부정에 추가로 연루된 사람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대학 측은 학칙에 따라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을 제적 처리하고 경찰에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A팀의 당선을 무효처리하고 28일 투·개표소에 CCTV를 설치한 뒤 재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대학 총학생회장의 대물림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올 6월 국립대인 전남 S대에서도 총학생회장 박모 씨(30)가 경찰에 붙잡혔다. 폭력조직 ‘순천 중앙파’ 소속 박 씨는 2008년 전남 순천에서 2년제 대학 학생회장을 하며 학생회비, 교비 등 4800만 원을 횡령하고 S대에 편입한 뒤 지난해 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경찰 조사 결과 박 씨를 비롯해 이 조직에 소속된 18명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천 2개 2년제 대학 총학생회장직 등을 대물림하며 모두 4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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