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전남 고흥군 고흥읍 고흥군법원 마당. 50∼70대 어민 100여 명이 추위를 참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상 4도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송기춘 씨(65·고흥군 두원면)는 기자에게 “어민들을 위해 380km나 떨어진 고흥군법원까지 와 재판을 진행한 판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흥군법원은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출장을 와 이혼소송, 소액재판을 진행하는 전형적 시골법정이다.
서울고법 민사8부는 이날 오후 3시부터 1시간 반 동안 고흥군법원 2층 법정에서 고흥만(灣) 방조제 담수방류가 인근 어장에 미친 영향을 둘러싼 환경소송의 항소심 첫 재판을 열었다. 법원이 소송 당사자를 위해 찾아가 재판을 연 것은 1948년 대법원 설립 이후 처음이다. 서울에만 있는 환경전담 재판부에 소송을 내놓고 생업이 바빠 재판을 방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어민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법정은 33m²(약 10평)로 좁고 의자도 18개밖에 없어 어민 20여 명만 대표로 방청했다. 이날 오전 배를 타고 고흥만 방조제를 둘러본 뒤 법정에 온 홍기태 부장판사는 “많은 어민이 방청할 수 있도록 고흥까지 내려왔는데 법정이 좁아 송구하다”며 재판을 시작했다.
직접 찾아온 재판부에 남암어촌계 정원웅 씨(71)는 “1970∼90년대 고흥만은 새조개가 많이 잡혀 어획량의 99%를 일본에 수출했지만 방조제가 들어선 뒤 새조개 등이 폐사하고 있다”고 하소연했고, 8세 때부터 물질을 해온 고흥만 유일의 해녀 양선희 씨(66·여)가 증인으로 나서 고흥만 바닷속 상황을 증언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