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모든 중소 납품업체의 판매수수료를 낮춰 달라고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요청했다.
지난해 4700여 개 중소 납품업체 중 절반을 대상으로 판매수수료를 내린 대형 유통업체에 나머지 절반의 수수료도 낮추라고 요구한 것이다. 판매수수료는 유통업체 매장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대가로 납품업체가 유통업체에 낸다.
내수 침체와 월 2회 강제휴무로 가뜩이나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은 공정위의 요구에 “부당한 경영 개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최근 롯데 신세계 현대 등 3개 대형백화점과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3개 대형마트에 판매수수료를 추가로 인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3일 밝혔다.
지철호 공정위 기업협력국장은 “백화점 및 대형마트 임원들과 간담회를 열어 지난해 판매수수료 인하 대상이 된 업체들 외에 나머지 업체에 대해서도 판매수수료를 낮춰 달라고 요청했다”며 “연말까지는 추가 인하가 매듭지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정위가 추가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지난해 판매수수료를 낮춘 11개 대형 유통업체의 실태를 최근 점검한 결과 인하 실적이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4700여 개 중소납품업체 중 절반가량을 대상으로 판매수수료를 3∼7%포인트 낮추기로 대형 유통업체들과 합의했다.
이어 지난해 10∼12월 공정위가 판매수수료 인하 실적을 점검한 결과 2272개 중소업체들이 연간 약 358억 원의 판매수수료 인하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됐다. 3개 백화점에서 186억 원, 3개 대형마트 129억 원, 5개 TV홈쇼핑 43억 원 등이었다.
공정위가 이번에 문제 삼은 것은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거래액이 작은 소규모 영세납품업체 위주로 판매수수료를 인하하거나, 세일기간에는 판매수수료를 인하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백화점이 판매수수료를 낮춰준 중소 납품업체 1054개 가운데 86%인 907개가 연간 거래액 10억 원 이하 소규모 업체였다. 대형마트는 전체 900개 업체 가운데 850개 업체(94%)가 연간 거래액 10억 원 미만이었다.
지 국장은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수익이 떨어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규모 업체들을 중심으로 판매수수료를 낮췄고, 그나마 할인기간에는 수수료를 낮춰주지 않았다”며 “동반성장 취지에서 벗어난 숫자 맞추기식 인하이자 무늬뿐인 인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정위는 중소 납품업체에 대한 판매수수료 추가 인하를 요구하는 동시에 낮췄던 수수료를 다시 올리거나, 인테리어 비용 등 다른 비용을 인상하는 대형 유통업체가 있는지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공정위는 5월 홈플러스를 현장조사한 데 이어 최근 납품업체로부터 신고가 접수된 이마트에 대해 2일 현장조사를 벌였다.
대형마트들은 “공정위의 경영 개입이 지나치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판매수수료를 추가로 내릴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강제휴무와 영업시간 단축으로 3개 대형마트의 2분기(4∼6월) 매출은 2009년 3분기(7∼9월) 이후 11분기 만에 처음 감소했으며 백화점 역시 매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시장논리에 따라 형성된 판매수수료를 정부가 손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면서 “공정위의 요청과 정치권의 요구로 매출과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가로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는 건 지나친 처사”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또 백화점업계의 관계자는 “판매수수료 인하는 영업이익이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공정위가 법에도 없는 기준을 임의로 만들어 밀어붙이는 것은 부당한 경영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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