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명동성당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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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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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서울대교구장 이임미사

1. 1939년 7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첫영성체를 받고 본당 문 앞에서 포
즈를 취한 8세의 정진석 추기경. 2. 1961년 3월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첫 강복을 내리는 30세의 정 추기경(가운데). 3. 1998년 6월 명동
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67세의 정 추기경. 4. 15일 오후 명동
성당 본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끝내고 나와 주교관으로 향하는 정 추기경(오른쪽).한국교회사연구소·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 1939년 7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첫영성체를 받고 본당 문 앞에서 포 즈를 취한 8세의 정진석 추기경. 2. 1961년 3월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첫 강복을 내리는 30세의 정 추기경(가운데). 3. 1998년 6월 명동 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67세의 정 추기경. 4. 15일 오후 명동 성당 본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끝내고 나와 주교관으로 향하는 정 추기경(오른쪽).한국교회사연구소·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여기(명동대성당)에서 (가톨릭의) 7개 성사 중 (혼인성사와 병자성사를 뺀) 5개를 받았는데… (좌중 웃음). (떠나는) 감회를 말로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교구 사제와 신자들)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14년이 휙 지나갔네요.”

15일 오후 3시 20분 서울 명동대성당. 제13대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였던 정진석 추기경(81)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이에 앞서 2시부터 시작해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는 그가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집전하는 마지막 미사였다.

미사 종료와 함께 흰색 제의와 주교관을 벗은 그는 붉은색 추기경 정복과 주케토(가톨릭 성직자들이 쓰는 작은 원형 모자) 차림으로 돌아와 제대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신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 대구대교구 이문희 대주교 등 가톨릭계 주요 인사들과 함께 정든 제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정 추기경은 20일 명동대성당 울타리 안에 있는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에서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로 이사한다. 은퇴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 때까지 머물던 강성삼관이 정 추기경의 새 거처다.

정 추기경에게 20일 ‘명동발 혜화동행’은 직선거리 3km 이상의 의미다. 명동성당은 추기경의 신앙적 고향이다. 친가와 외가 모두 4대에 걸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 정 추기경의 부모는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했다. 정 추기경은 꼬마 복사(服事·신부 옆에서 미사 진행을 돕는 이)로 명동성당 제대 위에 처음 올랐다. 중학교 시절 변증법적 유물론을 배우고 신앙적으로 방황할 때 그를 바로잡아준 것도 다름 아닌 이곳이었다. 당시 윤형중 신부의 사순절 특강에 감화된 그는 훗날(2003년) 과학으로 신앙을 논증하는 서적(‘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을 펴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를 졸업한 정 추기경은 평소 꿈꾸던 공학도의 길을 걷기 위해 1950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지만 6·25전쟁 때 군에 소집돼 생사를 넘나드는 체험을 한 뒤 사제의 소명을 받았다. 1954년 대신학교(지금의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그의 ‘혜화동 시절’이 열린 것이다.

1961년 정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서울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로 사제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다시 혜화동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사라진 혜화동의 성신고(소신학교)에서 1961년부터 68년까지 교편을 잡았고 부교장까지 지냈다.

정 추기경은 이후 이탈리아 로마 유학 중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돼 1970년 청주에 부임한다. 명동과 혜화동을 떠나 28년간 청주를 제2의 고향 삼아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는 1998년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되면서 신앙의 고향 서울 명동대성당으로 돌아왔다. 2006년에는 이곳에서 한국 교회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되는 기쁨을 안았다. 20일은 정 추기경이 젊은 시절 신학생으로 사제의 초심을 기르며 어린 신학생들을 가르치던 혜화동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15일 오후 3시 40분, 이임 미사와 송별식까지 마치고 본당 마당으로 나온 정 추기경은 수많은 취재진과 신자들에 둘러싸였다. 주교관까지 이르는 50m의 길이 이들로 가득 메워졌다.

“명동을 떠나 혜화동에서도 지금처럼 제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작은 정성과 기도가 우리 교회와 교구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정 추기경 이임 미사 강론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정진석 추기경#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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