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헬기, 블랙박스 확인 안돼… 사고원인 못찾을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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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된 시신 훼손 심해 신원확인 작업속도 더뎌… 한국측 조사단 참여는 불발
신원 파악 한국인 1명은 삼성물산 직원으로 알려져

페루 쿠스코 시내 산티아고에 있는 쿠스코 모르헤(시신안치소·왼쪽)에서 한 시신 수습 요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쿠스코=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페루 쿠스코 시내 산티아고에 있는 쿠스코 모르헤(시신안치소·왼쪽)에서 한 시신 수습 요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쿠스코=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페루 정부가 헬기참사 사태와 관련해 현지조사에 착수했지만 사고 원인을 밝힐 블랙박스가 헬기에 장착됐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사고 원인 규명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페루 교통통신부 항공사고조사위원회는 10일 조사단 4명을 투입해 사고 현지를 둘러보며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는 조사단에 참여하겠다고 페루 정부에 요청했지만 페루 측이 조사는 주재국가의 고유 권한이라며 거절해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본보 12일자 A12면 폭발로 산화… 유전자 검사로 신원 확인땐

쿠스코의 한 호텔에 설치된 현지상황실을 지휘하고 있는 김완중 주페루 한국대사관 공사는 11일 “사고 헬기에 블랙박스가 있었는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며 “헬기는 37년 된 노후 기종으로 2000년에 엔진을 교체했으며 블랙박스 설치는 의무조항이 아닌 옵션(선택조항)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현지 경찰은 사고 헬기의 블랙박스 존재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직 사고 헬기의 잔해도 현장에서 수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사고 헬기를 잘 아는 한 현지 전문가는 11일 “사고가 난 ‘시코르스키 S-58 ET’에는 조종사의 목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블랙박스가 장착되지 않았다”며 “페루에 있는 어떤 헬기도 블랙박스를 갖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사고 헬기에는 비행 날짜와 고도, 속도 등을 기록하는 장치가 있으며 위성을 통해 본부와의 교신기록으로 남게 된다”며 “하지만 교신기록이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페루 현지 경찰은 사고 희생자 시신을 쿠스코 시내의 산티아고에 위치한 시신안치소로 옮겨 주페루 한국대사관 당국자와 피해자 소속 업체 직원을 불러 신원확인 작업을 벌였지만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신 상태를 확인한 대사관의 한 당국자는 “사고 헬기가 현장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시신이 시커멓게 그을려 아주 좋지 않았다”며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언덕에 자리잡은 시신안치소는 허름한 건물로 내부에는 파란 비닐 옷을 입은 시신수습 요원이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14구의 시신은 지하실에 보관돼 있다. 대사관 당국자는 “시신은 알루미늄 판에 올려져 있기도 하고 바닥에 놓여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8구의 한국인 시신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한 구는 삼성물산 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 측에선 페루 당국의 요청으로 11일 오전 6명의 치아 X선 등 치과진료기록을 한국에서 긴급히 전달받아 전했지만 12일 새벽까지도 시신확인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신원확인 작업이 늦춰질 것에 대비해 삼성물산 측에선 삼성의료원의 전문의를 현장에 파견해 시신 확인 작업을 돕겠다는 방침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아침 서영엔지니어링 최영환 전무와 임해욱 전무의 유족들이 현지 상황실이 설치된 호텔에 도착한 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삼성물산 김효준 개발사업부장과 우상래 삼성물산 과장의 유족들이 도착했다. 현지상황실에서 해당 업체 직원들로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이들은 시종 굳은 표정으로 침통해 했다. 미국 비자를 구하지 못해 유럽을 경유해 입국하는 가족들은 12일 아침에야 현지에 도착했다.

당초 대사관 측은 시신확인 작업이 마무리되는 11일 오후에 유족들이 시신안치소를 찾아 시신을 확인토록 할 계획이었으나 페루 현지 경찰의 시신확인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일단 시신이 확인된 유가족에 한해 안치소 출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페루 경찰은 시신을 서울로 옮길 경우에 대비해 수도인 리마로 운구할 경찰 비행기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다.

한편 댐 건설 예정지인 이남바리 강을 시찰하기 위해 사고 헬기에 탑승한 한국인 8명은 모두 고참 부장이상의 간부급으로 실무 과장들은 헬기 좌석이 충분치 않아 탑승하지 못해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 관계자는 “전문가 중심으로 탑승자를 선정하면서 실무과장 4명은 호텔에 남았다”며 “이들은 사고 후 모두 공황 상태에 빠져 급히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전했다.

쿠스코=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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