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헌 대장, 6년전 조난 때 야크젖 먹여 구조해준 네팔 노부부 만나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 8信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의 박정헌 대장(왼쪽)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생명의 은인인 두나르 셰르파 씨(오른쪽)를 만나 옛 일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에서 생사의 기로에 섰던 박 대장을 발견하고 그의 목숨을 구했다. 카트만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히말라야 촐라체(해발 6440m). 정상 부근 수직 벽의 높이만 1500m에 이르는 이곳은 올해 한국 산악인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악명 높은 곳이다.
2005년 1월. 이 산의 북벽을 넘어오던 산악인 박정헌 씨(40)는 생애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 함께 걷던 후배 최강식 씨(31)가 산과 빙하 사이에 생긴 거대한 틈 속에 빠진 것이다. 두 사람은 자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한 상태. 최 씨가 떨어지면서 그의 온 체중이 실린 자일이 잡아채는 바람에 박 씨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최 씨는 떨어지면서 바위벽에 부딪혀 두 다리가 부러졌다. 두 사람이 함께 구덩이 속에 빠지기 직전 박 씨가 들고 있던 도구로 힘껏 얼음 위를 내리찍었다. 최 씨는 허공에 매달렸고 그와 자일로 연결된 박 씨는 구덩이 입구 직전에서 버텼다. 두 사람의 목숨이 끈 하나에 달렸다. 박 씨의 힘이 다하면 두 사람은 동반 추락사할 처지였다. 후일 박 씨는 그 끈을 끊고 혼자 살아서 갈 생각도 해보았다고 고백했다.
온 힘을 다해 최 씨를 끌어올린 박 씨는 탈진 상태였다. 몸을 다친 두 사람은 평소 3시간이면 내려올 수 있는 거리를 2박 3일간 기어 내려왔다. 이들은 강추위 속에서 간신히 야크들을 기르는 움막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피했으나 혼절했다. 움막에서 두 사람을 발견한 이는 두나르 셰르파 씨(83)였다. 그는 사흘 동안 따뜻한 야크 젖을 먹이면서 두 사람을 살렸다. 그의 두 딸은 눈이 무릎까지 쌓인 촐라패스(5350m)를 넘어 박 씨가 적은 구조요청 쪽지를 박 씨의 일행에게 전했다. 이후 박 씨와 최 씨는 동상으로 각각 손가락 8개씩을 잘라야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거벽 등반가였던 박 씨는 이후 자일을 쥐지 못해 등반가로의 꿈을 더 키우지 못했다. 몇 년간 좌절했다. 그러던 박 씨는 패러글라이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히말라야 횡단에 나서게 됐다.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는 23일 촐라체를 찾았다. 원정대장으로 이곳을 다시 방문한 박 씨는 생명의 은인을 만나러 나섰다. 수소문하니 예전에 살던 마을을 떠나 네팔 카트만두의 아들집으로 갔다고 했다. 박 대장은 27일 카트만두까지 그를 찾아갔다. 노인 부부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람과 기쁨이 교차하는 듯했다. 박 대장은 노인을 덥석 안으며 한참을 울부짖듯 통곡했다. 노인은 어깨를 두드리면서도 박 대장의 사라진 손가락을 보며 연신 네팔어로 “라무르차(괜찮은가)”라고 물었다. 노인은 중풍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거동이 힘들었지만 예전처럼 박 대장에게 야크 젖을 먹이던 시늉을 해보였다. 또 박 대장이 언 손의 통증 때문에 비명을 지르던 모습도 몸짓으로 표현하는 등 당시를 선명히 기억했다.
박 대장의 눈에 노부부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했다. 박 대장은 “할머니가 물이 바로 얼어버리는 강추위 속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오면 할아버지가 말없이 이불 속에서 할머니를 안아주며 체온으로 몸을 녹여주는 모습을 매일 보았다”고 했다.
박 대장은 “사랑과 행복을 히말라야의 산속에서 깊이 느꼈다. 목숨을 건진 이후부터는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히말라야는 고난을 통해 그에게 삶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원정대는 29일 현재 히말라야 칸첸중가(8603m) 인근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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