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은 죽음의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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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과실 상대 운전자 숨져버스블랙박스 사고기록 지워… 자료복원한 검찰에 결국 두손

‘블랙박스는 네가 지난겨울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묻힐 뻔한 교통 사망사고가 차량 블랙박스의 복원으로 진실이 가려졌다.

음식 배달을 하던 조모 씨(27)는 지난해 11월 7일 낮 12시경 전북 전주시 전미동의 한 사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시내버스와 부딪혀 이틀 만에 숨졌다.

조 씨의 오토바이와 시내버스는 모두 적색 신호에서 사거리로 진입해 쌍방 과실이었지만 겁이 난 버스 운전사 임모 씨(51)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 버스회사 사고처리 담당자와 짜고 블랙박스에 녹화된 사고 당시 장면을 지웠다. 경찰은 임 씨에게 신호 준수 여부를 추궁했지만 위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고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돼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됐다.

사건은 그렇게 묻힐 뻔했다. 그러나 담당 김호준 검사(40)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보고 기록을 꼼꼼히 재검토했다. 블랙박스 하드디스크 저장 파일이 수정됐다는 것을 밝혀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광주고검 디지털분석팀에 보내 복원에 성공했다. 복원된 블랙박스에는 “내가 신호를 위반했는데 기록을 지울까”라는 임 씨와 사고처리 담당자의 대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검찰이 증거를 보여주자 임 씨는 사실을 자백했다.

검찰은 임 씨와 사고처리 담당자에 대해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전주지법 관계자는 “임 씨가 증거를 없애려 했고 계속 말을 바꾸는 등 죄질이 불량해 영장을 발부했다”며 “버스공제조합을 통해 보험도 들어 있고 유족과 합의하면 불구속될 수도 있는데 어리석게 증거인멸까지 시도하다 일을 키웠다”고 말했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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