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거주 30, 40대 여성 8570명 소비형태 분석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6일 03시 00분


테남 vs 테북… 서울강남 가르는 테헤란로, 사모님들 씀씀이도 갈랐다

서울 강남구의 인구는 56만여 명.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지만 교육, 부동산, 패션 시장에서 이들의 소비는 한국을 가늠하는 트렌드가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강남특별시’도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테헤란로를 기점으로 소비 지형도가 남과 북으로 나뉜다. 유통업계에서는 테헤란로 북쪽으로 주거단지가 집중적으로 형성된 압구정동, 청담동, 삼성동을 ‘테북’, 198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아파트촌이 들어선 테헤란로 남쪽의 대치동, 도곡동, 개포동을 ‘테남’으로 일컫는다.

사실 테북, 테남이라는 표현은 사교육 시장에서 나온 말이다. 아파트와 고급빌라가 혼재한 테북 지역에서는 사교육으로 과외가 선호되고, 대단위 아파트 거주지가 밀집한 테남에서는 학원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 이 표현은 강남 고급상권을 분석할 때도 통용된다는 것이 유통업계 종사자들의 말이다. 백화점 명품 담당 바이어들이 ‘사립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 참석한 엄마들의 가방만 봐도 살고 있는 동(洞)을 맞힐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동아일보 산업부는 현대백화점에 의뢰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30∼49세 여성 고객 가운데 테북 지역 거주자와 테남 지역 거주자 8570명의 한 해 씀씀이를 분석했다. 이들이 지난해 구입한 명품잡화(가방, 구두, 시계, 보석)와 수입의류, 여성의류, 화장품 등 4개 군별로 브랜드 매출 순위를 조사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테북, 테남을 가로지르는 테헤란로에 위치해 두 지역의 고객들이 자주 찾는 점포인 데다 국내외 명품 브랜드들이 거의 입점해 있다. 단, 샤넬은 무역센터점에 입점해 있지 않아 매출 순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신사동은 거주단지와 상업시설이 혼재해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 테북은 에르메스, 테남은 루이뷔통


여성들에게 가방은 패션의 완성이다. 옷은 자라나 갭을 입어도 가방만큼은 명품을 드는 것이 강남의 불문율이다. 이번 테북과 테남의 소비지역 간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가방이었다. 테북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소비자가 가장 많이 구입한 명품 잡화는 에르메스였다. 에르메스는 켈리백 가격이 1000만 원이 넘는 초고가 브랜드다. 그에 반해 테남의 ‘잇 백(it bag·갖고 싶어 하는 백)’은 루이뷔통이었다. 두 브랜드의 가방 가격 차이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최고가를 기준으로 할 때 에르메스가 최대 2배 이상 비싸다. 현대백화점 명품담당 신동한 차장은 “40대 이상 연령이 많은 테북에서는 쇼핑 예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에르메스처럼 초고가 제품을 구매할 여력이 많은 편”이라며 “(테북 지역 거주자들은) 제품 구매 주기도 짧아 보통 출시 3, 4년이 지난 모델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입의류군에서도 테북과 테남의 지역색이 두드러졌다. 두 지역 다 돌체앤가바나가 1위에 올랐지만 테북에서는 몽골 산악지대의 염소 배 부분의 털로 만든 캐시미어 브랜드 로로피아나가 2위에 올랐다. 이어 마르니, 콜롬보, 닐바렛처럼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들이 매출 상위권에 포진했다. ‘청담동 며느리’ 룩으로 불리는 이 브랜드들은 재킷 한 벌의 가격이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반면 테남에서는 아르마니, 마크제이콥스, 마이클코어스, 끌로에처럼 국내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수입의류가 강세였다.

여성의류에서 테북 소비자들의 쇼핑 아이템은 단연 모피였다. 상위 10위 브랜드 가운데 모피 브랜드가 3개나 올랐다. 반면 테남에서는 진도모피만이 10위 안에 들었다. 신동한 차장은 “지난해 겨울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모피의 경우 갤러리아 명품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신세계 강남점으로 전국 매출 1, 2, 3위가 정해질 정도로 테북 지역 거주자들이 모피 시장을 좌지우지했다”고 전했다. 또 테북에서는 구호나 오브제, 랑방, 띠어리처럼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내세운 브랜드가 강세인 반면 테남에서는 타임, 마크바이제이콥스, 질스튜어트, 마인, 손정완 등 좀 더 젊고 여성스러운 디자인이 돋보이는 브랜드가 사랑을 받았다.

화장품의 경우 테북에서는 설화수나 라메르처럼 40대 이상 여성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가 상위 10위 안에 올랐다. 라메르는 45mL짜리 에센스 1병의 가격이 285만 원에 달하는 고가 브랜드다. 테남에서는 바비브라운, 샤넬, 디올처럼 색조 제품이 강세인 브랜드들이 인기였다.

○ 테북-테남, 패션 취향도 달라


요즘 청담동에서 ‘뜨는’ 디자이너 브랜드 가운데 미국 뉴욕 출신 디자이너 필립 림의 매장 ‘3.1 필립 림’에는 성인복 컬렉션의 라인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재와 사이즈를 아동에게 맞춘 ‘키즈 바이 필립 림’이 전시돼 있다. 스웨덴 스타일을 내세운 이 브랜드는 워낙 튀는 디자인이라 보통 사람은 소화하기 힘든 옷이 많다. 하지만 자녀와 함께 입기에 그만인 라인이라 유명 연예인은 물론이고 이 지역에 사는 30, 40대 기혼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3.1 필립 림처럼 컨템포러리(그 시대의 가장 새로운 패션 흐름) 브랜드가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곳도 청담동이다. 패션트렌드분석회사인 트렌드포스트 박은진 수석연구원은 “테북 지역에는 해외 유학 경험이 많고 쇼핑예산이 여유로워 패션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라며 “꼬르소꼬모, 분더샵 등의 명품 편집매장이 성행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면 학원가가 집중적으로 형성된 테남은 자녀 교육 때문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 트렌드에 덜 민감하다고 분석했다. 자녀 교육에 지출하는 비용과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기보다는 보편적으로 검증된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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