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1명… 전남 신안군 지도초교 선치분교 신민아 양의 ‘특별한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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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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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에겐 엄마도 친구도 없어요… 하지만 하나도 외롭지 않아요
천사같은 선생님이 있으니까요”

3일 전남 신안군 지도초등학교 선치분교에서 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인 신민아 양이 선생님(이은주 교사) 머리에 유채꽃을 꽂아주고 있다. 내년이면 근무기간이 끝나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하는 이 교사의 바람은 민아에게 많은 친구와 좋은 엄마가 생기는 것이다. 선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3일 전남 신안군 지도초등학교 선치분교에서 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인 신민아 양이 선생님(이은주 교사) 머리에 유채꽃을 꽂아주고 있다. 내년이면 근무기간이 끝나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하는 이 교사의 바람은 민아에게 많은 친구와 좋은 엄마가 생기는 것이다. 선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일 오전 8시 반경 전남 신안군 지도읍 선도(蟬島). 선착장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던 신민아 양(8)은 조바심이 났다. 주말에 광주 집에 가셨던 선생님이 오실 시간인데 배가 도착하지 않아서다. 터벅터벅 학교로 돌아가던 민아는 멀리서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자 손을 흔들었다.

“아! 선생님이다.”

승용차에서 내린 선생님이 “민아야 늦어서 미안해”라며 웃자 덥석 품에 안겼다. 민아는 전남 목포시에서 50여 km 떨어진 지도초등학교 선치분교에 다닌다. 선치분교는 학생이 2학년 민아 혼자뿐인 ‘나 홀로 학교’다. 민아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올해 교사생활 4년째인 이은주 씨(29·여). 아빠와 단둘이 사는 민아는 선생님이 엄마나 다름없다. 섬에 친구 한 명 없는 민아는 5일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선생님 손을 잡고 뭍에 나가 마음껏 동심의 나래를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들꽃 닮은 섬마을 아이


이은주 선생님이 민아를 위해 쓴 시 ‘이른 아침’이 민아가 다니는 학교 복도에 걸려 있다. 선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은주 선생님이 민아를 위해 쓴 시 ‘이른 아침’이 민아가 다니는 학교 복도에 걸려 있다. 선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뽀로로 뮤지컬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지난해 어린이날 민아는 이 교사 부모가 사는 광주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뮤지컬 공연을 봤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왔지만 민아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엄마 같은 선생님이 곁에 있어서였을까. 민아는 올해도 선생님이 뭘 보여주실지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민아는 들꽃을 좋아한다. 분교를 찾은 이날 민아는 이 교사가 관사에서 점심상을 차리는 사이 어디선가 이름모를 노란 꽃을 한 움큼 꺾어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지난해 스승의 날에는 들꽃을 은박지로 예쁘게 싸 교단에 가져다 놓았다. 미혼인 이 교사는 본교에서 2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3월 분교로 왔다. 이 교사는 “섬에 또래 아이들이 없다 보니 꽃이 친구가 된 것 같다”며 “며칠 전에는 민아가 하도 졸라 학교 뒷산에 올라 꽃구경하며 반나절을 보냈다”고 귀띔했다.

민아 아빠(44)는 바다 일을 한다. 민아가 네 살 때 부인과 이혼하고 섬에 들어왔다. 봄과 가을에는 낙지, 여름에는 장어를 잡고 겨울에는 김 양식장 일에 매달리다 보니 민아를 돌볼 시간이 많지 않다. 민아는 오전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무릎에 앉아 컴퓨터를 익힌다. 장구와 영어도 함께 배우고 있다. 이 교사는 가끔 민아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준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민아를 유도 도복 띠로 묶고 달린다. 또래보다 몸이 왜소한 민아가 혹시나 떨어져 다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이 교사는 유도 공인 4단이다. 민아는 아빠가 뭍에 나갔다가 배를 타지 못하면 관사에서 선생님과 함께 잠을 잔다. 이 교사는 “칭얼대다가도 꼭 껴안아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코를 골며 자는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말했다.

○“민아에게 친구가 돼주세요”


민아는 학교에 가면 할아버지도 있다. 바로 이 교사의 아버지 이상현 씨(60)다. 이 씨는 자주 집에 못 오는 딸을 볼 겸, 학교 일도 도울 겸해서 한 달에 보름 정도 분교에서 지낸다. 이 씨는 “섬에서 혼자 생활하는 딸이 걱정돼 1년만 근무하고 본교로 가라고 했더니 ‘민아가 눈에 밟혀 못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귀양살이를 한다”고 웃었다.

민아는 한 달에 두 번 본교에 ‘협동수업’을 하러 간다. 본교가 있는 지도읍은 섬에서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있지만 배가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무안으로 배를 타고 나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한다. 지난해만 해도 민아는 본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선생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수업하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 옷에 ‘실례’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민아는 이 교사와 1년을 지내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본교 교사들이 “이 선생 딸 왔네”라며 반갑게 맞아주고 친구들도 하나 둘 생기자 얼굴이 밝아졌다. 한글과 숫자를 깨치지 못하던 아이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민아 아빠는 제법 의젓해진 딸을 볼 때마다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는 이날 점심시간에 어제 잡은 산낙지와 집에서 만든 김무침, 콩자반을 싸들고 찾아왔다. 민아 아빠는 “애를 맡겨놓고 지금까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못했다”며 “민아에게 선생님은 ‘천사’나 다름없는 분”이라고 고마워했다. 이 교사는 내년이면 근무기간이 끝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엄마 품이 그리울 민아 곁을 떠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민아에게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엄마도 생기고요. 들꽃 같은 우리 민아가 외롭지 않게요.”

선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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