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어제까진 백수… 이젠 어엿한 동네선생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30일 03시 00분


■ 구로구 멘터링 프로그램

“연주보다 중요한 것은 뭐다? ‘리듬’이다!”

21일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 동구로초등학교 교실. ‘리듬’을 강조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11명의 초등학생들은 노랫소리에 흐느적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기타 모양의 ‘우쿨렐레(하와이 현악기)’를 든 아이들은 4개의 줄을 부드럽게 튕기며 ‘곰 세 마리’와 ‘반짝 반짝 작은 별’을 합주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사제 관계 같지만 선생님은 ‘구직자’, 아이들은 ‘취약계층 아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이곳은 구로구가 운영 중인 ‘아동·청소년 멘터링’ 프로그램 현장이다.

○ 교육-취업기회 일석이조


이 프로그램은 재능은 있으나 취업하지 못한 20, 30대 청년들을 고용해 교육 및 문화 습득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가정과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가르치는 것. 구직자 취업을 돕는 인턴제나 취약계층 어린이들의 방과 후 활동 프로그램은 일반화됐지만 두 사업을 하나로 묶어 내놓는 경우는 드물다. 구로구 관계자는 “인턴제는 채용 기간이 제한돼 있고 취약계층 어린이 방과 후 활동 프로그램은 아이템 개발에 한계가 있다”며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절박한 사람들이 서로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구로구 내 20, 30대 청년 실업자는 약 1만1600명.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6760명이다.

이달 초부터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는 서주현(가명·12) 양은 다문화가정 어린이. 서 양은 “엄마가 일본인이어서 가끔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우쿨렐레를 배워 친구들에게 연주해주며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우쿨렐레를 포함해 미술, 연기 등 예술을 가르치는 ‘문화 멘터링’과 국어 영어 수학으로 대표되는 ‘학습 멘터링’ 등 두 가지로 구성됐다. 수업을 통해 선생님은 월 70만 원의 강의료를 받는다. 어린이들은 월 1만∼2만 원을 내고 수업을 듣는다.

○ ‘생계형 주부’도 절박한 구직자


구로구는 2년 전부터 지역 내 대학인 성공회대와 이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지역 사회 서비스 투자 사업’에 응모해 우수 사업으로 선정됐다. 소요 예산인 6억2700만 원은 보건복지부가 50%, 서울시와 구로구가 각각 25%씩 ‘매칭 펀드’식으로 조달하고 있다.

사실 이 프로그램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은 선생님 이 모 씨(35)였다. 그는 현재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고 있다. 5년 전 남편 간호로 생긴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우쿨렐레를 배웠고 우연한 계기에 이 프로그램에 강사로 나서게 됐다. 스스로를 ‘생계형 구직 주부’라 부르는 이 씨는 “주부가 일자리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구로구 관계자는 “현재 구직자 50여 명, 취약계층 아동 200여 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며 “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나 심리치료 등 앞으로 분야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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