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태 100일]고통 겪고… 마음 졸이고… 10인이 전하는 현장 목소리

  • Array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 8일로 구제역이 100일을 맞는다. 100일이라는 시간이 힘들었던 건 비단 축산농가뿐만이 아니었다. 공무원, 농장주, 수의사, 관련 산업 종사자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도 구제역으로 큰 고통을 겪었고 마음을 졸였다. 모두 구제역을 극복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때로는 같이 울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이 같은 상황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구제역을 옆에서 지켜본 10명이 말하는 구제역 100일의 소회를 모아봤다.<전국 종합> 》

■ 순댓국값 오르고 손님은 뚝… 망할 지경
윤석정 병천아우내식품 대표(충남 천안시)


“대표적인 서민식당인 순댓집들이 다 쓰러지게 생겼어요. 실제로 순댓집 30곳이 모여 있는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 인근 순대 골목 손님도 크게 줄었죠. 순대, 내장 등 재료 구하기도 힘들고, 재료값도 많이 올랐어요. 가격이 오르니 국밥은 5000원에서 6000원으로, 포장 순대는 8000원에서 1만 원으로 올려서 팔아요. 원가대로 한다면 순댓국 한 그릇에 1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 제주까지 다녀왔습니다. 구제역이 잡혀도 어미돼지가 거의 도살처분됐으니 새끼돼지가 다 클 6개월 동안은 재료비가 내려가지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 죽어가는 지역경제 엎친 데 덮친 격
정갑철 화천군수(강원 화천군)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1월이면 군내 식당 입구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어요. 매년 100만 명이 다녀가는 국내의 대표적인 축제이고 직접적인 경제효과만 500억 원에 이릅니다. 올해는 구제역으로 축제가 취소되면서 민박, 식당 예약한 1만 명이 예약을 취소해 버렸어요. 군부대가 많은 화천은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도발 등으로 군 장병의 외출·외박이 통제되면서 지역 경기가 완전히 죽었는데 산천어축제까지 취소되니…. 당장 80여만 t의 산천어를 처리하는 것도 걱정입니다. 20일까지 열리는 산천어 루어낚시 행사로 17만 t가량은 소비하겠지만 남은 63만여 t은 어찌해야 할지….”

■ 지역 행사 잇단 취소 보상도 못받아
조두현 내일기획 사장(전북 전주시)


“1월에 전남 구례군에서 열리는 ‘구례산수유꽃축제’ 행사 대행업체로 선정됐을 때 뛸 듯이 기뻤어요. 그런데 이달 말에 열려야 할 행사가 구제역 때문에 취소됐습니다. 공연 출연자들 섭외도 끝내고 의상 준비에 연습까지 시작했는데…. 보상해달라고 할 데도 없고. 솔직히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모두 힘든데 나만 이기적인 건가’ 싶으면서도 속상합니다. 전체 예산이 1억∼2억 원짜리 행사라도 우리 같이 직원이 5명뿐인 영세한 지방 이벤트 기획사에는 굉장히 큰돈입니다. 그런 지방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니 한숨만 나옵니다.”

■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공포 자체
김태수 신기농장 대표(경북 안동시)


“지난해 12월 21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식같았던 소 220마리를 한꺼번에 다 묻었죠. 20년 동안 소만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돼 버렸습니다. 빈 축사를 보면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와요. 소 덕분에 딸 셋을 출가시켰는데…. 소를 다 잃고 나서 날아온 세금고지서를 보니 한숨만 나오데요. 처음에 도살처분 보상금 50%를 우선 받긴 했지요. 그런데 그건 밀린 사료값 등 빚 갚고 나니 남은 게 하나도 없어요. 이번 구제역으로 깨달은 게 있어요. 구제역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아주 무서운 것이더라고요. 축산농가 스스로 예방해야만 막을 수 있는 거죠.”

■ 8억 원어치 비료 전부 폐기할 상황
전춘근 청림바이오텍 대표(충북 음성군)


“지난해 이맘때는 한참 성수기라 직원이 9명이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직원을 3명으로 줄였습니다. 그나마 남은 직원들도 지난달 월급을 못 줬어요. 직원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구제역으로 당장 회사가 부도 위기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래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니 비료 팔 데도 없어지고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타 지역으로 비료 반출을 금지하니 어디 다른 데에 넘길 수도 없고…. 지금 창고에 쌓여 있는 비료가 시가로 8억 원어치입니다. 이걸 모두 내 손으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그저 먹먹할 뿐이죠. 게다가 우리 같은 비료업체는 보상 받을 방법도 없어요.”

■ 정부-국민에 경각심 못준 보도 반성
한상준 동아일보 농림수산식품부 담당 기자


“지난해 한 해에만 총 세 번의 구제역을 취재했습니다.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구제역 확산의 원인과 향후 대책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보도해 정부에 경각심을 줬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도살처분 규모 20만 마리, 30만 마리, 100만 마리’ 식의 숫자에만 초점을 맞추는 무감각한 ‘경마저널리즘’에 빠졌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공무원, 농장주, 전문가들은 ‘구제역은 소, 돼지는 물론이고 사람에게도 못할 짓’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정말 이 ‘못할 짓’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막을 수만 있다면 고생이 문제인가요
조수진 전남 함평경찰서 읍내파출소 경사(전남 함평군)


“방역작업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했어요. 파출소 소속 14명이 매일 2명씩 조를 이뤄 방역초소를 맡고 있죠. 이번 겨울은 어찌나 춥던지…. 장갑을 껴도 금방 손이 얼어요. 소독액을 뿌리면 칼바람에 금방 얼어버려 빙판길이 되어 버리고. 경찰생활 14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고생요? 우리가 하는 게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그나마 우리가 지키는 전남에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에요. 함평이 한우로 유명한데 구제역이 하루 빨리 소멸해 축산농민들의 마음고생도 끝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다들 애쓰지만 고기 꺼려지는 건 사실
유유경 가정주부(서울 양천구 목3동)


“구제역 처리에 많은 애를 쓰셨지만, 축산 농가의 피해와 도살이 너무 많이 이루어지고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안타까웠어요. 6세, 3세의 두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들이 마음 아프고 끔찍한 내용의 뉴스를 보는 게 싫어서 애들과 TV 볼 때는 일부러 뉴스를 틀지 않았어요. 구제역 이후 식단도 좀 바꿨어요. 애들한테 한우를 즐겨 먹였는데 영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생선으로 단백질 공급원을 바꿨어요.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닭고기 먹이기도 찜찜해요. 애들한테 우유 200mL 두 팩을 매일 먹이는데 값이 오를 것 같아 걱정이에요. 싼 두유로 바꿀까 봐요.”

■ 수의사가 병 옮긴다는 말은 억울
여상근 풍산가축병원 원장(경북 안동)


“평생 수의사로 일하면서 이번 같은 최악의 가축 질병은 처음 봐요. 가축을 살리는 게 수의사가 할 일인데 오히려 도살처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태어난 지 3일밖에 안 된 송아지를 도살처분할 때 기분은 참담하더라고요. 정말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돼요. 그나마 예방 백신주사를 놓을 때는 마음이 좀 편하데요. 살려 주는 거니까. 수의사가 구제역을 옮겼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억울해요. 구제역이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가축이 아프다고 하는데 가지 않을 수의사가 어디 있겠어요?”

■ 10년 앞 내다본 축산업 대책 만들 것
정승 농림수산식품부 2차관


“이번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온 몸을 던져가며 최선을 다한 공무원, 군인, 경찰, 자원봉사자 여러분과 정성껏 키운 소와 돼지를 매몰하고 마음이 아팠을 축산농가에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를 잃고 외양간마저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구제역으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 구제역을 계기로 새로운 국경 검역과 방역 시스템을 수립하고, 10년을 내다보는 축산업 선진화 대책도 내놓을 것입니다. 현재의 모든 제도를 ‘국민과 축산농가의 눈높이에서’ 정비해 이번 구제역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정리=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