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빅뱅 앞둔 ‘法그릇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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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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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생들 ‘로스쿨생, 검사 50% 선발 방침’ 반발… 입소식 절반 불참

2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42기 사법연수생 임명장 수여식에서 일부 연수생들이 연단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로스쿨 졸업생을 검사로임용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고양=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42기 사법연수생 임명장 수여식에서 일부 연수생들이 연단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로스쿨 졸업생을 검사로임용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고양=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일 오전 9시 50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사법연수원 대강당. 10시부터 제42기 사법연수생 입소식(임명장 수여식)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1000여 석 중 절반 정도가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연수원 측이 방송을 통해 참석을 독려했지만 연수생 수백 명은 대강당 바깥 로비와 기숙사 등지에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사상 초유의 연수생 집단행동

대강당 좌석 곳곳이 텅 빈 상태에서 입소식이 시작되자 연수생 2명이 가로 3m, 세로 80cm 크기의 현수막을 들고 단상 앞으로 기습적으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로스쿨 검사 임용방안 철회’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5분여간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날 974명이 임명장을 받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절반이 넘는 530명가량의 연수생이 불참했다. 연수생들은 입소식 후 이어진 수업 등에는 정상적으로 참여했지만 3일 오후 3시 반 대강당에서 연수생 전원이 참석하는 자치회 출범식을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어서 불씨는 꺼지지 않은 상태다. 자치회는 연수생들의 동의를 받은 뒤 법무부가 검토하고 있는 로스쿨생 검사 임용 방안의 백지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방침이다. 사법연수원 측은 “1일자로 연수생들은 별정직 공무원 신분”이라며 “집단행동인지 여부를 판단한 뒤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법무부가 “각 로스쿨 원장의 추천을 받아 로스쿨 졸업예정자 가운데 우수한 사람을 내년 초 신규 임용할 검사 가운데 최대 50%까지 우선 임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비롯됐다. 내년 초 로스쿨생 가운데 변호사 시험 합격자가 1500명으로 예정돼 있고 사법연수원 수료자는 1000명이 배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로스쿨생을 우선 임용하면 사법연수생의 몫이 크게 줄어든다는 게 연수생들의 시각이다.

이날 현수막을 들고 나온 연수생 오모 씨(32)는 “검사 우선 임용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로스쿨생들을 우선 임용하겠다는 법무부 방침은 ‘현대판 음서(蔭敍)제’와 다름없다”며 “자치회를 중심으로 기자회견, 성명 등 다른 대응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원장의 추천으로 임용자를 선발할 경우 고위 판검사 자제 같은 출신 배경이 좋은 로스쿨생이 특혜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부는 2일 “로스쿨생에게 검사 실무 수습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며 검사로 우선 임용하겠다는 것은 확정된 게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섰다.

○ 법조계 밥그릇 싸움 본격화

이번 사태는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2017년까지 과도기적으로 로스쿨 졸업생과 사법연수원 수료자가 동시에 배출되면서 예비법조인이 폭증하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현재 1만600여 명인 변호사가 2020년에는 2만 명 선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법조인력시장이 ‘빅뱅’ 상황을 맞으면서 법원 검찰 사법연수생 로스쿨 변호사단체 등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본격적인 밥그릇 싸움에 나서게 됐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법무부가 ‘검사 우선 임용’ 방안을 검토한 것은 로스쿨의 우수 인력을 선점해 놓지 않으면 법원과 대형 로펌에 다 빼앗길 것이라는 속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로스쿨 측은 법무부의 방안을 환영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2012년 합격자 비율은 75%로 겨우 타결됐지만 2013년 이후는 미정 상태다. 반면 대한변협 등 변호사단체는 로스쿨 졸업생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50%까지 낮추는 한편 젊은 변호사들을 법관의 재판보조 업무를 할 ‘로클러크(Law Clerk·법관연구관)’나 행정부 공무원으로 대거 임용해 청년변호사의 실업난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양=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동영상=사법연수원생 42기생들의 집단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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