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2차 오염’비상]“너 때문에 우리 소가 죽었다” 구제역에 찢긴 산골마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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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마저 오염된 현장

“서로 가족 같던 마을주민이었는데…. 이제는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 같네요.”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16번지에서 소목장을 운영해 온 고성열 씨(48)는 최근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다. 고 씨가 사는 사능리 16번지는 영락동산 비탈을 따라 형성된 골짜기 마을이다. 취재진이 12일 찾은 이 마을은 산꼭대기에서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10여 개의 축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지역주민에 따르면 이 마을에 사는 40여 명의 주민은 서로 사이가 좋기로 유명했다. 집들이 붙어 있는 데다 같은 목축 일을 하다 보니 축산 일이 많을 때면 서로 격려하며 상대방 목장의 일을 도왔다. 또 평소 자주 함께 밥을 먹고 주말이면 인근 산으로 놀러가기도 했다. 고 씨는 “이 골짜기 (사람들은) 한가족처럼 좋았지. 정말 한가족처럼”이라면서 “모든 것이 7일부터 바뀌기 시작했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7일 구제역 바이러스가 이 마을을 덮치면서 일대 목장의 소 400여 마리를 땅에 묻어야 했다. 고 씨의 목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14개 축사의 소들이 구제역으로 매몰됐다. 고 씨의 경우 미리 소에게 구제역 백신을 맞히고 방역을 철저히 해 도살처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친구처럼 지내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도 불화가 시작됐다. 고 씨는 “처음 구제역이 마을에 왔을 때 다들 걱정하면서도 밤을 지새우며 서로 위로했었다”며 “하지만 소를 다 잃고 나자 점점 마음이 사나워졌다”고 말했다.

자주 만나던 주민들은 점차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누구 탓에 마을에 구제역이 들어왔나’라며 따지기 시작했다. 구제역 피해가 없던 고 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 씨는 “이제는 서로 말도 안 하고 왕래도 없어”라면서 “구제역 때문에 모든 게 단절됐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고 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송아지를 나눠주며 화합을 도모할 계획이다. 12일 기자가 찾은 이 마을은 유령마을처럼 사람도 가축도 보이지 않았다. 빈집에 홀로 남은 개가 짖는 소리만 들렸다.

고 씨뿐만이 아니다. 15일 현재 구제역으로 전국에서 865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4632곳에 묻히면서 한국 특유의 ‘시골 인심’과 농촌 특유의 ‘끈끈한 정’이 사라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내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남양주 지역에서 제일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사능리에 사는 축산농 김칠성 씨(40)는 “주변 사람들이 ‘당신 목장을 시작으로 사능리 전 지역에 구제역이 퍼졌다’고 비난했다”며 “심하게는 ‘너 때문에 우리 소가 죽었다’라고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는 소 137마리가 도살처분됐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의 한 마을도 마찬가지. 지역주민에 따르면 이 마을은 구제역 파동 이후 최근 예정된 각종 마을 행사가 취소됐다. 주민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소 농장을 운영하는 박모 씨(66)는 “구제역으로 서로가 경계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남양주·홍성=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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