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선 이달 초 반 40명 가운데 32명이 사회과목 수행평가에서 최하점을 받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음은 최하점 32명에 속한 정모 양(14)의 증언.
“1주일 전 선생님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공부해오면 쪽지시험을 보겠다’며 수행평가 과제를 내주셨어요. 인터넷 검색 창에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쳐보니 관련 글 수백 개가 떴어요. 그중 ‘지식검색’으로 올라온 수십 개의 글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글을 찾아 ‘컨트롤 시 컨트롤 브이(컴퓨터 자판의 Ctrl+C를 눌러 내용을 복사한 뒤 Ctrl+V를 눌러 이를 붙여 넣는 행위를 뜻하는 신세대 은어로 베낀다는 뜻)’ 했답니다.”
복사한 내용을 달달 외운 정 양. 드디어 수행평가시간이 되자 답안지에 외운 내용을 고스란히 적어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10점 만점에 최하점인 4점을 받은 것이다. 억울한 마음에 교무실을 찾아갔다. 그러자 교무실에는 똑같이 억울한 심정으로 뛰어온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이미 당도해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 반 32명이 똑같은 답을 적은 거예요. 문제는 32명 모두가 오답을 적었다는 거죠. 인터넷에서 복사한 내용은 ‘헬레니즘은 신(神) 중심, 헤브라이즘은 인간 중심’이 골자였는데, 이게 완전히 잘못된 내용이었던 거죠. 반대로 헬레니즘은 인간 중심,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이었으니까요.”
잘못된 인터넷 정보로 공부에 피해를 본 중고교생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수행평가에서 학생들이 겪는 피해는 막대하다. 대부분 논술형으로 이뤄지는 수행평가의 경우 한번 인터넷에서 잘못된 정보를 ‘정답’으로 오인해 베껴 쓸 경우 ‘완벽하게’ 틀린 답지를 제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고교생들이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정보를 ‘진리’인 양 맹신한다는 점. 게다가 검색 창에 키워드만 쳐 넣으면 답이 ‘빛’의 속도로 뜨니, 학생들의 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매일 한 권 이상 책을 읽어 ‘독서왕’이라 불리던 중2 남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 국어과목에서 책을 정해 독후감을 쓰는 수행평가과제를 앞두고 그는 인터넷 서점에 공개되어 있는 해당 서적의 줄거리를 달달 외웠다. 외운 내용을 100% 답안지에 써낸 그는 결국 낭패를 보았다. 독후감의 대상서적은 시리즈로 구성된 이 책의 ‘1편’이었으나, 그가 답으로 쓴 줄거리는 이 책의 ‘2편’ 내용이었던 것. 인터넷 서점에 공개된 1편 줄거리에 2편의 줄거리가 잘못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건 뒤로 그는 선생님으로부터 ‘표절왕’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인터넷 베끼기에서 초래되는 이런 코미디 같은 사건들은 과목을 불문한다. 내신 성적이 상위 4%안에 드는 한 중3 여학생이 수학자인 피타고라스의 생애를 조사해 오는 수행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 올라 있는 ‘피타고라스의 생애’를 참고했는데, 알고 보니 수학자 파스칼의 생애였던 것이다.
중3 박모 양(15)은 중국어 말하기 수행평가에서 망신을 당한 경우. 박 양은 자기 차례가 되자 외워온 중국어 문장을 힘주어 말했다.
“니 쭈구오 파위 마?”
박 양이 ‘너는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있니?’라는 뜻의 이 중국어 문장을 읽는 순간,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크게 읽으니 선생님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졌다.
“저는 ‘쭈구오 파위’라고 읽었는데 알고 보니 중국어 발음은 ‘쉬에궈 훼유’였던 거예요.”(박 양)
수행평가 결과는 10점 만점에 7점. 하루 2시간씩 사흘 동안 수행평가를 준비했던 박 양에게 불만족스러운 점수였다. 평소 반 1, 2등을 다투며 성격이 꼼꼼하기로 소문난 박 양. 왜 이런 황당한 실수를 했을까.
“수행평가를 준비하다 포털 사이트 카페에 ‘ni xueguo fayu ma는 어떻게 읽나요?’라고 물어봤어요. 2시간이 지난 뒤 누군가가 ‘니 쭈구오 파위 마라고 읽습니다’란 답글을 달아주었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쓴 답을 그대로 믿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겨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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