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는 두번 울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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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일부 농협, 주문전화에 “우리 소관 아니다” 핀잔

6일 오전 8시 반. 충남 예산군 최운현 부군수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오늘 동아일보(A12면 보도)에 ‘태풍 피해 과수 농가를 돕기 위해 낙과(落果)를 사주세요’라는 기사 때문에 난리 났어요. 여기저기서 전화 주문이 오고 있습니다. 낙심한 농민들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최 부군수는 서울과 인천에 있는 예산향우회에서 ‘무조건 낙과 500박스를 사겠다’는 말이 너무 고마워 직접 트럭에 물건을 싣고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그는 “낙과는 농가로부터 즉각 수거한 뒤 판매용, 주스용, 잼용으로 분류했다”며 “팔아주기만 하면 농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부군수가 전화를 끊자마자 충남도 농수산물유통과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한 직원은 “우리 부서는 낙과와 아무런 상관없는 데 왜 우리 전화번호를 보도했느냐. 해당 부서는 바로 앞 사무실인 재해대책본부다”며 항의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이번 태풍이 지나간 후 “과수농가 피해를 돕기 위해 낙과를 전 공무원이 나서 팔아줬으면 좋겠다”며 “낙과 팔아주기 운동도 벌이겠다”고 말한 것이 무색해지는 대응이었다.

불과 1시간쯤 지났을까. 한 독자는 “해당 능금농협에 전화했더니 ‘우리는 여수신만 담당하는 곳으로 낙과와는 아무런 관련 없다’며 핀잔을 들었다”고 전해 왔다. 능금농협은 과수재배 농가를 위한 금융보조기관일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상생해야 하는 조직이다. 이번 낙과 피해를 본 과수농가의 실태와 연락처를 모두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홍성능금농협에서는 과수농가들의 고통을 돕기 위해 “한 박스를 사고 싶다”는 독자 전화에 대해 “우리(농협)는 사과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신문에서 기사를 봤다고 하자 나중에는 “다 팔렸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 독자는 “농협이 농민을 위한 곳인지, 농민만 이용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앞 다퉈 발 벗고 나서야 하는데 담당 업무가 조금 다르다고 모른 체 할 수 있느냐”며 개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태풍으로 낙과 피해를 본 농가를 돕기 위해 “낙과 수매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탓인지 뒤늦게 충남도와 농협충남지역본부는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낙과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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