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연락이 끊겼던 우리 아이가 맞아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시신을 확인하니 기가 막히더군요. 녀석이 얼마나 상처받고 불쌍하게 살아왔는지 알았으면….”
경호업체 직원인 양정민 씨(23)는 6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늘 외롭게 살아왔다. 지난달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신천먹자골목에서 유학생들에게 맞아 숨진 그는 1987년 강원 정선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남동생을 낳던 중 사망했고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다. 동생은 친아버지의 동의를 받아 마음씨 좋은 박정하 씨(50) 부부에게 정식 입양됐다. 하지만 양 씨에겐 이마저의 운도 허락되지 않았다. 박 씨 부부가 동생에 이어 양 씨를 입양하려 했으나 이미 서류상 친권자인 친부가 자취를 감춰 정식으로 입양하지 못했다.
박 씨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마지막까지 외롭게 살다 떠난 가엾은 우리 아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양 씨를 정식으로 입양하지는 못했지만 양 씨가 보육원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취업할 때까지 남모르게 도왔다. 평생 착하기만 한 양 씨였지만 지난해 군 입대 영장을 받고는 사회에 대한 원망을 드러냈다고 한다. “평생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군대냐 이거였죠. 아버지가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친아버지가 살아있다고 병역 면제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억울해했어요.” 양 씨는 어찌됐든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조언하던 박 씨와도 연락을 끊어버렸다. 하나뿐인 동생과도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 반년째인 지난달 17일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양 씨는 사고 당일 오전 3시 반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신천성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그는 마침 맞은편에서 오던 7명의 무리와 어깨를 부딪쳤다. 박모 군(17) 등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했다가 함께 모여 술을 마신 인도의 한 국제고 동문들이었다. 살짝 어깨가 부딪힌 정도의 충돌이었지만 술기운이 문제였다. 박 군을 비롯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3명은 바로 주먹을 날렸다. 만취한 양 씨는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해보고 길바닥에 쓰러졌지만 그 이후로도 폭행은 계속됐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박 군 등이 택시를 타고 도망간 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진 양 씨는 뇌사 상태에 빠진 뒤 20일 후 사망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박 군 등 3명을 구속하고 이를 지켜본 김모 씨(19) 등 일행 3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또 군 훈련소에 입소한 최모 씨(20)에 대해서는 상해치사 혐의를 군에 통보했다.
양 씨가 평생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워했던 친부는 그가 중태에 빠진 뒤에야 얼굴을 드러냈다. 연락조차 닿지 않아 박 씨 부부가 수소문 끝에 겨우 찾아냈다. 양 씨를 잘 기르겠다고 박 씨에게 약속했던 양 씨 할아버지도 “이혼과 동시에 정민이를 보육원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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