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대학원 사실상 실패]의대와 비슷한데 학비↑ 효과↓… ‘어정쩡 6년 동거’ 막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일 03시 00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의·치전원)은 ‘이란성 쌍둥이’다. 둘 모두 최상위권 학생들이 법대와 의대로 쏠리는 현상을 막아보려고 만든 제도다. 하지만 진행 과정은 서로 달랐다. 로스쿨로 지정된 법대는 탄탄한 법적 토대 속에 한꺼번에 로스쿨로 전환했다. 경쟁을 뚫고 ‘로스쿨’이 됐다는 자부심도 컸다. 반면 모든 의대가 대상이었던 의전원은 달랐다. 의대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학교 자랑이었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알아서 들어오는 의대를 거저 포기하려는 의대는 없었다. 정부는 400억 원이 넘는 돈 보따리를 풀었지만 끝내 각 대학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마땅히 제재할 방법도 없었다.》

[1] 407억 쏟아붓고도 ‘유턴’… 왜
이공계 블랙홀 전락… 일부대학은 ‘의대 효과’ 집착



○ 슈바이처보다 성형외과 의사


의전원 제도가 국내에서 처음 논의된 건 의대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다양한 출신 배경과 학문 토대, 인성을 갖춘 의사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2001년 의전원 기본 계획이 마련됐다.

의료계는 의전원을 도입하면 질병을 치료하는 임상 의사 이외에도 예방과 건강 증진에 힘쓰는 전문 의료인력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전원에서 생명공학 분야에 우수한 의·과학자들이 나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입문 동기가 성숙한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슈바이처가 되기보다 성형외과 의사가 되길 원하는 왜곡된 문화를 바꾸겠다는 것도 의전원 도입의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의전원이 도입되면 반사이익으로 우수 학생이 의대 대신 이공계를 선택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의전원이 도입된 이후 이공계 학생들 상당수가 의전원 준비에 매달렸다. 권용진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실 교수는 “고교 이과 1등은 이공계에 갔더라도 결국 의전원 준비에 매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수험 공부로 자리를 비우면서 이공계 학부에서는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었다. 대학생 사교육 문제도 뒤따랐다.

의전원에 들어간 이들도 불평을 늘어놓았다. 의전원은 의무 석사 과정이기 때문에 의·치의대보다 등록금이 비싼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의·치의대생들도 의전원을 거부했다. 의·치의대 졸업생은 학사 학위를 받는데 의전원은 석사 학위를 받는다는 이유였다. 유철주 연세대 의대 교육부학장은 “거의 똑같은 수업을 듣는데 학위가 다른 것을 두고 학생들은 ‘등록금 차이 때문이냐’고 할 정도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서로 융화하지 못했다. 괴리감을 느낀다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학부 4년+의전원 4년’으로 교육 기간이 늘어나면서 의사들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여학생들이 의전원에 많이 진학하면서 군의관이 부족하다는 소리도 들렸다.

권 교수는 “의전원은 도입부터 잘못됐다”며 “다양한 학부에서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들 모두 임상의사의 길을 걷겠다는 목표는 똑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전원은 의대 진학에 실패한 이들에게 ‘흰 가운’의 꿈을 연장시켜 주는 수단에 불과했다.

○ 흰 가운의 치명적 유혹

전북 남원에 있는 서남대는 1991년 개교한 4년제 종합대학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대학이지만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포기하고 이 학교에 오는 학생들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학교에 의대가 있기 때문이다. 서남대는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 전환을 거부하고 기존 의·치의대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

전국 200개 4년제 대학 중 의대가 있는 학교는 41곳에 불과하다. 의대의 존재 자체가 곧 학교 명성과 직결된다. 대학 병원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아주대는 1994년 수원 캠퍼스 옆에 아주대학병원 문을 열면서 학교 ‘커트라인’ 전체가 올랐다. 입학 점수는 곧 대학 순위로 연결된다.

대학 관점에서 의전원은 의대 때문에 생기는 이런 효과를 한 번에 앗아가는 제도였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같은 명문 대학도 의전원 제도를 거부했다. 절반은 기존 의·치의대를 유지하고 절반은 의전원을 도입하는 ‘병행제도’를 유인책으로 내놨지만 이마저 소용없었다.

정부는 2002년부터 의전원을 도입하려 했지만 제도는 1년 뒤에야 시행됐다.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2009년에 운영 성과를 평가해 다시 결정하자”는 꼬리표가 붙은 채였다. 대학은 “법적 강제성이 없다”며 의·치의대 시스템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교과부는 6년 동안 407억200만 원을 체제 정착비 명목으로 지원했지만 1일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2] 재학생도 준비생도 혼란
의전원 1만여명 진로 걱정… 준비생 “차라리 수능 볼까”


○ 의전원, 불안한 뒷그림자


이미 의·치의대와 의전원을 병행 중인 12개 대학 가운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 동아대 영남대 등 6개 대학은 의대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성균관대와 한양대, 동국대도 의대를 선호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대 충북대 전남대는 아직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의전원을 졸업한 인턴 의사는 880명이다. 현재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에 6638명이 재학 중이다. 2014학년도까지 7848명이 입학할 예정이다. 앞으로 최소 1만3694명이 의전원 정책 실패에 따라 ‘낙동강 오리알’이 될 우려가 있다.

한 전임의는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솔직히 의전원 학생들은 실력이 좀 처진다. 의학교육입문시험(MEET) 보고 4년 공부한다고 아무나 의사 되는 게 아니다”라며 “대기업 다니다 온 학생들이 과연 힘든 흉부외과를 전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의사들 특유의 보수적 문화가 이런 우려를 더 키운다. 또 다른 전임의는 “솔직히 의전원 출신을 후배라고 생각하는 동료는 드물다. 펠로(fellow·전임의)나 페이 닥터(pay doctor·개인 병원에서 월급 받는 의사) 자리는 알음알음으로 소개해 주는 게 일반적”이라며 “의대 출신도 취업하기 힘든데 이들에게 자리가 얼마나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재학생들도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서울대 의전원 2학년 김모 씨(24)는 “이전부터 전환 이야기가 있었다. 예전부터 재학생들은 선배가 없기 때문에 나중에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되면 부담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며 “막상 전환이 결정되니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전원 준비생들도 미래를 걱정하긴 마찬가지였다. 고려대 2학년 A 씨(20)는 “당장 정원이 줄어드는 건 아닌 만큼 합격을 걱정하지는 않는다”며 “그런데 의전원을 나온다고 해서 당초 기대했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많이 사라졌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쳐서 지방 의대라도 갈까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가천의과대는 이날 발표에도 “의전원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학 신익균 부총장은 “졸업생이 2기 나왔는데 학부대학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의전원에 오면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사회공헌에 크게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완전전환 체제를 돌리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겨우 6년 해보고 교육 정책을 바꾸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학가에서도 ‘전략적으로’ 의전원을 선택하는 학교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 대학 관계자는 “서울대나 주요 사립대는 의대로 전환한다고 손해 볼 게 없다. 하지만 지방 의대는 상황이 다르다”며 “예전에 지방 의대를 선호하던 학생들이 의전원 때문에 수도권 이공계로 많이 진학했다. 이들이 올 것으로 기대해 의전원 체제를 유지할 대학이 더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3] 대입수험생 혼선 막을 대책은
2012학년까지 경과기간… 전환후 4년간 30% 편입선발


교육과학기술부는 의학 교육 체제가 갑자기 바뀌면 대입 수험생은 물론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도 혼란을 초래할 것에 대비해 경과 기간을 뒀다. 이에 따라 2017학년도까지는 수험생들이 의전원에 입학할 수 있다. 단 군입대, 휴학 등으로 2015년 2월까지 학부를 졸업하지 못하면 의전원에 진학할 수 없다. 이때는 학사 편입을 이용해 의대에 편입해야 한다.

2015년에 의대로 전환하는 병행대학은 2012학년도까지는 경과 기간이기 때문에 현재와 정원 차이가 없다. 정원이 100명일 경우 의전원 50명, 의대 50명씩을 선발한다. 그러나 현재 고교 1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2013학년도부터는 정원이 달라진다. 의전원 정원은 50명을 유지하지만 의대 정원은 70명으로 20명이 늘어난다. 늘어난 20명은 2015년 의전원 정원 50명이 의대로 합쳐질 때를 대비해 뽑는 예과 인원이다. 의전원은 4년이지만 의대는 ‘예과 2년+본과 4년’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2년 먼저 뽑는 것이다.

2015년 의전원이 폐지되면 신입생 선발 인원은 다시 100명으로 20명 줄어든다. 또 전환 후 최초 4년간은 정원의 30%를 학사편입학으로 선발해야 한다. 2018학년도까지는 신입생 정원이 늘지 않고, 그 이후에는 학사편입학 비율을 각 대학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의전원으로 완전 전환한 대학은 2017학년도부터 의대로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이들 대학은 현재 중학교 2년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15년부터 예과생을 뽑게 된다. 이때도 2017학년도부터 4년간 정원의 30%는 편입생으로 채워야 한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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