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침묵의 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5일 03시 00분


산불 5년… 천년고찰 위용 되찾았지만 산림회복은 아득
숯덩이 밑동등 화마상처 여전
식목일 각계 나무심기 줄이어

산 위쪽에서 바라본 낙산사 전경. 군데군데 검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불에 타 밑동이 잘려 나간 나무들이다. 양양=이인모 기자
산 위쪽에서 바라본 낙산사 전경. 군데군데 검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불에 타 밑동이 잘려 나간 나무들이다. 양양=이인모 기자

낙산사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2005년 4월 5일처럼 2일 오후 다시 찾은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 주변은 햇살은 따뜻했지만 바람은 세찼다. 당시 양양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낙산사 건물 대부분이 전소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불에 탔던 낙산사는 모두 복원돼 천년고찰의 위용을 되찾았다. 그러나 낙산사를 감싸고 있던 울창했던 산림은 옛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 아름드리 소나무 대신 숯덩이 밑동

주차장에서 낙산사 경내로 진입하는 길옆에는 숯덩이가 된 소나무 밑동이 수도 없이 눈에 띈다. 여름과 가을에는 높이 자란 풀에, 겨울에는 눈에 파묻혀 있던 화마의 상처가 봄이면 어김없이 그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다. 잘려진 소나무들은 지름이 30cm 이상으로 수십 년 된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이날 낙산사를 찾은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황량해진 산림에 아쉬운 눈길을 보냈다. 10여 년 만에 낙산사를 방문했다는 백낙수 씨(73·충남 서천군)는 “예전에 왔을 때 절과 어우러진 울창한 숲이 참 보기 좋았다”며 “빽빽했던 숲이 사라진 지금의 모습을 보니 허전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양양군에 따르면 산불 이후 지난해까지 73억6500만 원(국가 예산 지원 포함)을 들여 수령 30∼80년 소나무 5700여 그루를 심었다. 올해도 정부로부터 전통 사찰림 복원사업비로 3억4000만 원을 지원받아 수령 10∼20년 소나무 180그루, 활엽수 묘목 1만 그루를 추가로 심을 계획이다. 고려대 학생과 교직원 100여 명은 3일 낙산사를 방문해 1000여 그루의 소나무 묘목을 심었다. KT&G 직원들도 10일 낙산사에서 2000본의 영산홍을 심을 계획이다. 김득중 낙산사 종무실장은 “식목일을 앞두고 개별적으로 나무를 심으러 오겠다는 연락이 많았지만 산림 복구는 양양군의 장기 계획 아래 진행되는 점을 감안해 사양했다”고 말했다.

○ 방수총 17개…작은 불씨도 정조준


산림 복구 못지않게 산불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도 치밀하다. 낙산사는 건물을 복원하며 각종 화재 예방 시스템을 구축했다. 17개의 방수총(放水銃)이 주요 건물을 겨누고 있고, 능선과 산책로에는 화재 여부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는 20여 개의 불꽃감지기가 설치됐다. 또 건물마다 크고 작은 소화기들이 둘러싸고 있어 누구나 화재 발생 시에는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낙산사 범종각 뒤편에는 소방차 1대가 항상 대기 중이다. 사용 연한이 다 됐지만 진화작업에는 문제가 없는 소방차를 기증받은 것이다.

이재선 강원대 교수(산림자원학과)는 “산불 피해 지역 복구는 경제성과 산림 가치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진행하는 것”이라며 “낙산사 산림 복구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사람들의 정성과 예산만 뒷받침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양양=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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