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당국 잘못 왜 교사-학부모에 떠넘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준 일괄적용 무리” 지적
‘자율고 편법 입학’ 건보료 기준 뒷북 수습에 선의 피해자 속출

A 씨는 자기 소유로 된 주택을 가지고 있지만 법적으로 파산 신청을 낸 상태다. 그래서 학교장 추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자녀를 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에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장 추천 전형을 이용한 ‘편법 입학’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학교에서 돌연 추천을 취소해야 한다며 동의서를 요구했다. 건강보험료를 월 6만7392원(4인 가족 기준) 이상 내는 만큼 학교장 추천의 요건인 ‘기타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빈껍데기나 마찬가지인 집 때문이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는 시교육청이 뒤늦게 들이대고 있는 ‘건강보험료 월 6만7392원’ 기준 때문에 A 씨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가정 형편을 판가름해 학교장 추천서를 내도록 하는 건 낯선 일은 아니다. 서울지역 최초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를 비롯해 자율고에 앞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실시한 특목고 등에서 이미 적용했던 기준이다.

문제는 시교육청의 조치가 교육 당국의 잘못(규정 미비)을 학부모나 교사에게 떠넘기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일선 중학교와 학부모들은 “처음부터 이런 기준을 만들었으면 억울한 피해자는 없었을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지법 판사 출신의 정영환 고려대 법대 교수는 “학교장의 추천은 불법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재량 행위이기 때문에 명백한 하자가 없는 한 입학 허가 취소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6만7392원은 최저 생계비(4인 가족 기준 136만3091원)의 200%인 272만6182만 원을 버는 가정을 기준으로 정한 금액이다. 하지만 건강보험료는 한 가지 기준으로 책정하는 금액이 아니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크게 월급에서 보험료가 나가는 직장 가입자와 자영업자 같은 지역 가입자로 나뉜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직장 가입자는 보험 납부료를 보면 소득을 예상할 수 있지만 지역 가입자는 재산과 소득에 따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A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월 보험료가 6만8000원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이날 서울시교육청에 모여 해당 학생들 처리 방안을 논의한 자율고 교장들도 한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 시교육청에서 진작 기준을 제시했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율고 편법 입학 문제는 이달 3일 KBS 뉴스에서 처음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언론에서 다시 문제를 제기한 22일까지 시교육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