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돈선거… 섬주민 30% 줄소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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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관 20명 파견 1093명 조사
일부 “돈 봉투 받았다”… 자수권유 방송

“조합장을 뽑으면서 섬이 발칵 뒤집혀 부렀당께. 돈 받았다고 자수한 사람도 꽤 된다고 하던디….”(주민 박모 씨)

“징허요. 징해. 선거 얘기는 꺼내지도 마쇼. 어디 얼굴 들고 살것소.”(주민 김모 씨)

23일 전남 목포에서 66km 떨어진 신안군 임자도. 여느 때 같으면 대파 수확철을 맞아 섬이 들썩들썩하겠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밭일을 하는 주민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길을 가다 외지인들과 마주치면 시선을 피했다. 면 소재지 파출소는 하루 종일 경찰관과 주민들로 붐볐다. 나루에도 경찰관들이 배를 타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탐문을 했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임자농협 조합장 선거에 대규모 돈 봉투가 뿌려진 정황이 드러나면서 빚어진 일이다.

조합장 선거에서 돈이 뿌려졌다는 제보가 신안군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온 것은 이달 11일. 한 조합원이 두 명의 후보에게 각각 100만 원을 받았고, 이 중 50만 원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는 내용이었다. 선관위는 제보 내용을 확인한 뒤 곧바로 목포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18일부터 수사관 20명을 임자도에 파견하고 파출소에 이례적으로 수사본부를 차렸다. 현재 경찰은 조합원 1093명을 대상으로 일일이 금품 수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임자도 주민은 모두 3721명. 3명 가운데 1명이 수사 대상인 셈.

경찰은 이날 현재 조합원 400여 명을 조사했다. 경찰은 핵심 선거원 등 혐의가 짙은 조합원은 파출소에서, 일반 조합원은 밭이나 집으로 찾아가 각각 진술을 받고 있다. 이미 경찰은 조합원 수십 명으로부터 10만 원 이상이 담긴 돈 봉투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선관위가 자수를 권유하는 안내방송을 하고 수사관들이 각 마을을 방문해 설득한 결과 자수자가 늘고 있다”며 “출마한 후보 모두 돈을 건넨 혐의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경찰 수사와 별도로 22개 마을을 돌며 ‘자진 신고할 경우 과태료를 면제하도록 하겠다’는 마을 방송을 네 차례나 했다. 현행 선거법에는 ‘받은 돈의 50배 이하’로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돼 있다.

돈 선거 후폭풍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이번 조합장 선거(임기 4년)에는 모두 5명이 출마해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선거 결과 박모 씨(63)가 249표를 얻어 전임 조합장 김모 씨(49)를 1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당선자와 가장 낮은 득표를 한 후보 간 표차도 109표에 불과했다. 투표율도 93.7%로 유례없이 높았다.

대파와 양파, 천일염, 새우젓 주산지인 임자도 농협 조합장은 연봉이 1억 원이 넘고 연간 150억 원 정도를 대출해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막강한 자리다.

신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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