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대입 절치부심 기숙학원의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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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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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는 공부 얘기만!… 교무실 들어설 땐 ‘합격!’ 구호”

오전 6시30분∼밤 11시40분, 하루 15시간 ‘공부 지옥훈련’
밥 먹을 때도 허공 응시하며 단어 외우고… 공식 되새기고…
“내년 봄엔 나도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

《대학입학을 앞두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한창인 2월 중순.
이 시절이 누구에게나 아름답진 않다. 지난 대입에서 고배를 마시고 대입기숙학원에 들어가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는 재수생들에게라면 더욱.
기숙학원의 재수생들은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수업과 자율학습을 반복하며 하루 15시간을 공부한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공부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현장, 기숙학원을 찾았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꼭 해내고야 말겠다! 나는 꼭 대학에 합격한다!”

18일 오전 6시 40분 경기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기숙학원인 성남대성학원. 점호 시작과 함께 학생들은 벽 한편에 걸린 액자 속 ‘나의 각오’ 문구를 크게 복창한다. 지도교사가 인원파악을 마치자 학생들은 서둘러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장으로 향한다. 생활지도교사의 통제에 따라 남학생과 여학생이 번갈아 세면을 마친다. 2층 식당으로 줄지어 내려가 식사를 한다.

똑같은 파란색 생활의복을 입은 채 식당으로 향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작은 단어장이나 학원교재를 들여다보고 있다. 식사를 하러 걸어가는 시간은 물론 밥을 먹는 자투리 시간까지도 공부다. 매주 화·금요일 자율학습시간에 치러지는 영어단어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단어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학생, 밥 먹다 말고 허공을 응시하며 수학 과학에서 이해가 어려웠던 공식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학생까지 다양한 모습이다. 식사 후 서둘러 강의실로 올라가는 시간은 오전 8시. 이제부터 50분간은 영어듣기평가다.

정규수업이 시작되는 오전 9시. 한정훈 씨(18·서울 강동구)는 지난 한 달간 그랬듯 수업시작 전 마음속으로 ‘더 이상 실패는 없다’라고 세 번을 되뇐다. 수업이 시작됐다. 강사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학생들이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순간, 한 씨는 벌떡 일어나 책을 들고 강의실 뒤편으로 향한다. 피곤으로 밀려오는 졸음을 떨쳐내려는 것.

지난해 11월 수능 이후 ‘공부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실천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실패했다’고 판단한 한 씨는 최근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평소 수학공부를 할 때 답을 맞히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왜 이 문제를 틀렸을까’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큰 약점이었단 걸 알게 됐다”며 “이젠 문제를 틀리면 문제를 푸는 공식과 풀이과정을 일일이 오답노트에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답노트 작성은 학원에서 조언해 준 방법이지만, 나 스스로 정리하는 방법과 습관을 길렀다는 사실에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곳의 생활관리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휴대전화, MP3플레이어는 ‘당연히’ 소지가 금지된다. 심지어 ‘머리는 한 갈래로 묶어야 한다’ ‘점심시간에는 공부에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하지 않는다’ 같은 ‘행동강령’도 있다. 교무실을 찾을 때는 “합격!”이라고 경례를 한 후 용건을 말해야 한다.

이런 기숙학원 생활이 답답하지 않을까? 임서옥 씨(19·여·강원 강릉시)는 “오히려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 동네의 작은 학원을 다녀본 것이 전부인 임 씨로선 기숙학원에 적응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왜 머리를 한 갈래로만 묶어야 하는지’ ‘왜 지난 3년간 가졌던 공부습관을 버리고 일정 시간에 일어나고 자야 하는지’ ‘왜 줄지어 이동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불만을 품기 시작하니 나오는 음식, 잠을 자는 침대를 향해서도 전에 없던 불만이 생겨났다. 이런 불만투성이의 마음으론 재수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느낀 임 씨. 그는 지난해 수능을 보고 고사장을 나설 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심정을 떠올리며 ‘여기서 죽을 만큼 열심히 공부해 보자’고 의지를 다졌다.

마음을 바꾸니 학원의 모든 규칙이 편하게 느껴졌다. 공부를 위해 몇 분의 시간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하자 머리를 한 갈래로 묶는 일은 외려 당연해졌다. 규칙적으로 잠들고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니 아침시간을 활용해 공부하는 게 어느새 몸에 배었다.

자율학습이 시작되는 오후 6시 40분. 박찬희 씨(19·여·경기 안양시)는 전날 자신이 ‘학습일기’에 써놓은 ‘자율학습목표’를 하나씩 확인하며 공부를 한다. 이날 박 씨의 공부목표는 ‘비문학, 쓰기 및 문학작품 정리’ ‘인터넷강의 2세트 듣기’ ‘○○문제집 풀기’ ‘문제집에서 틀린 문제 확인하기’ 등 4가지. 실천한 항목에는 ‘O’를 표시하고, 실천하지 못한 항목에는 ‘×’ 표시를 한 뒤 실천하지 못한 이유를 분명히 적어둔다. 지난달 초 기숙학원생활을 시작한 박 씨는 주위 학생들의 열정에 놀랐다. 수능 성적이 4∼5등급 나온 학생들이 서울지역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평소 ‘내 주제에 서울대는 어림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던 그로선 충격이었다. 박 씨는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내 목표를 서울대 심리학과로 ‘업그레이드’ 했다”고 말했다.

박 씨가 자신의 17일자 공부계획노트에 적어 넣은 ‘하루 정리 및 내일 다짐’ 내용에는 스스로를 응원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원래 난 수학에 조금 거부감을 가지던 아이였다. 그런데 계속 하다보니 재밌고, 자연스레 흥미가 생긴 것 같다. 또 요즘은 여기서 아무 생각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파이팅! 박찬희!’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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