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3분의 1 영재반 편성…신문-소설 읽고 ‘정답없는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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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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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버지니아 주 명문공립 ‘롱펠로 중학교’를 가다

“똑똑한 학생끼리 따로 공부
고도의 창의적 사고력 배양”
IQ-성적 등 평가해 선정
수학 우수생은 고교서 수업
작년 美1위 공립高 최다합격

《“1920년 4월 15일 오후 3시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구두회사 경리책임자인 프레드릭과 경호원 알레산드로가 직원들에게 월급으로 나눠줄 1만5776달러를 공장으로 들고 가던 도중에 살해됐다. 2명의 용의자인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니콜라와 바르톨로메오가 붙잡혀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19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의 폴스처치 시에 있는 롱펠로 중학교 7학년 영재교육반 역사시간. 제이슨 스몰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토론과제다. 기소된 2명의 용의자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고 학생이 검사와 변호사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리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30명의 학생은 3, 4명씩 팀을 나눠 검사와 변호사 입장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용의자가 무죄인지 유죄인지를 판단하고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기소문과 변론문이 얼마나 논리적인지가 평가 잣대다. 스몰 교사는 “기본 지식은 이미 알기 때문에 따로 강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전교생 1202명 중 381명이 영재반

19일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의 폴스처치 시에 있는 롱펠로 중학교 7학년 영재교육반 학생들이 영어수업 시간에 관심 있는 신문 기사와 소설 등을 읽은 뒤 문장 구조를 분석하면서 토론하고 있다. 폴스처치=최영해 특파원
19일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의 폴스처치 시에 있는 롱펠로 중학교 7학년 영재교육반 학생들이 영어수업 시간에 관심 있는 신문 기사와 소설 등을 읽은 뒤 문장 구조를 분석하면서 토론하고 있다. 폴스처치=최영해 특파원
롱펠로 중학교는 지난해 미국 공립고등학교 서열 1위인 버지니아 주 과학영재고등학교인 토머스제퍼슨(TJ)고교에 가장 많은 합격생을 배출했다. 150명이 지원해 75명이 합격했다. 이처럼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은 전교생의 3분의 1이 영재반(Gifted and Talented Class)에 편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교생 1202명 중 381명이 영재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영재반에 들어가려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핵심 4과목에서 A를 받아야 하며 학부모지원서와 교사추천서 및 지능지수(IQ) 테스트 결과도 제출해야 한다. 또 페어팩스카운티 공립학교 영재선발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된다. 스몰 교사는 “똑똑한 학생들의 질문이 도발적이고 학부모들의 요구도 까다로워 교사들이 영재반을 맡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똑똑한 아이들끼리 따로 공부시켜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토론 및 자기주도 학습 위주

페어팩스카운티교육청은 각 학교에 영재반 설립을 권장하고 있다. 영재 판정은 학교가 아닌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별도의 영재교육센터에서 맡는다. 페어팩스카운티에서는 3학년부터 8학년까지 전체 학생의 16%인 9687명이 영재교육을 받는다. 학업성적뿐 아니라 지능지수와 관심사, 논리적인 사고능력, 학습 의욕, 외국어 사용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격 여부를 판단한다. 일단 영재반에 들어가면 본인이 희망하지 않는 한 8학년까지는 계속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영재반 영어 교사인 세라 셔몬스키 씨는 15분 동안은 자율학습을 시킨다. 학생들은 관심이 있는 신문 기사를 읽거나 소설책이나 잡지를 읽고 있었다. 독서 후엔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문장 구조를 분석해 기록해야 한다. 영재반 과학 시간도 토론, 학생들의 질의와 교사의 답변 위주로 진행됐다. 이날 수업시간엔 ‘과학자들이 말더듬을 유발하는 첫 번째 유전자를 찾았다’는 AP기사와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은 조상이 같다’는 내용의 한 잡지에 실린 기사가 학생들에게 배포됐다.

○ 수준에 따라 맞춤형 수업

영재반에 있는 학생이어도 수학은 수준에 따라 반이 다시 나눠진다. 7학년의 경우 7학년 수학과 7학년 우등수학, 우등대수Ⅰ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우등대수Ⅰ은 고등학교 학점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우등대수Ⅰ에서는 고등학교 과정인 수열과 극한 증명 문제 등 심화학습 위주로 짜여 있다. 이 학교에서는 우등대수Ⅱ를 배우는 학생도 19명이 있으며 수학 실력이 아주 뛰어난 한 학생은 인근 매클린 고등학교로 가서 수학을 배운다. 이 학교는 지난해 전국 수학경시대회인 ‘매스카운트(MathCount)’에서 1등을 차지했다. 수준별 교육을 하는 데 대해 부모와 교사, 학생 모두 만족해한다.

28년째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번 윌리엄스 교사는 “뛰어난 학생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영재라 하더라도 같은 반에서 모아놓고 가르치기 힘들다”며 “나이가 어릴수록 수학 흡수 능력이 뛰어나 고급과정이라도 중학교 1, 2학년 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폴스처치=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실력 따라 나눠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어”▼
■ 캐럴 킴 교장



롱펠로 중학교를 이끌고 있는 캐럴 킴 교장(사진)은 “학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적극 도전하라고 격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왜 정규반과 우등반 영재반을 나누나.

“각 학생의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이 나중에 대학을 지원할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중학교 때 영재반과 우등반 과목을 많이 들을수록 고등학교에 가면 대학과정(AP) 과목을 이수할 준비가 더 잘돼 있게 된다.”

―부모와 교사의 반응은….

“풀타임 영재반에 들어가지 못해도 기회는 많다. 영어 수학 과학 역사 과목은 별도로 우등반이 따로 있다. 능력이 되고 원하면 들을 수 있다. 학부모들은 영재반을 좋아한다. 교사들이 수월성 교육프로그램을 맡는 것을 즐긴다. 영재반을 맡으려면 교사들은 별도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왜 롱펠로 중학교에서 영재반이 강한가.

“최고의 교사진이 있고, 훌륭한 교육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은 다른 중학교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탁월하다. 페어팩스카운티에서 우등대수Ⅱ 과목을 개설한 곳은 우리밖에 없다. 학부모들도 아주 적극적이다.”

―뒤처지는 학생들에 대한 특별교육 과정은 있나.

“학기말 고사에서 한 과목을 낙제하면 다음 학기에 선택과목 대신 낙제과목을 다시 들어야 한다. 만약 수학에서 낙제하면 다음 학기에 수학을 2개 들어야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재반에 들어왔다가 낙제하는 학생은 없나.

“원하지 않는 한 일반반으로 쫓겨나지 않는다.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면 부모와 교사가 회의를 해 수업을 조정해 준다. 작년에 딱 한 명이 영재반에서 자발적으로 나왔다. 지금 이 학생은 3개 과목은 우등반에서 듣고 나머지 1개는 일반반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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