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美 소년을 자살로 몰고간 환경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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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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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고 한적한 미국 중산층 마을에서 한 10대 소년이 자살한 채 발견된다.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소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소년의 시신을 검시하던 부검의는 이 소년에게서 젖샘이 발달한 여성형 유방을 발견한다. 자살 전에 이를 손상하려 한 흔적도 찾았다. 이를 근거로 또래와 다른 몸을 가진 것을 비관해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제 수사의 초점은 소년의 몸에 왜 소녀의 가슴이 생겨나게 됐는지에 모아졌다. 수사결과 마을 식수원이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오염된 것이 밝혀졌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이 물을 마셔온 소년은 2차 성징이 발달하는 시기에 남성의 몸 대신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미국 드라마 ‘CSI: 라스베이거스’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흔히 환경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인해 성적 발달이 저해되거나 성 분화가 교란되는 얘기를 소재로 삼았다. 새롭지 않은 소재다. 그러나 에피소드의 결말이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싱글맘’이었던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겠다며 중산층 마을에 집을 마련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직장을 두 군데나 다녀야 했다. 하지만 이 노력이 오히려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이 됐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졌다. 아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려던 노력이 오히려 아들을 ‘나쁜’ 환경에 밀어 넣은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전에서 ‘환경(環境)’의 뜻을 찾아보면 ‘생물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고 있다. 적어도 인간에게 있어서만큼은 ‘자연적 조건’으로서의 환경과 ‘사회적 상황’으로서의 환경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를 한 것은 자연적 조건 탓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환경의 자연적 조건과 사회적 상황이 상충되는 경우 사회적 상황을 선택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몇몇 특정 사회적 조건이 모든 것의 결정 근거로 이용된다.

이런 면에서 최근 들어 나타나는 특정 지역 편중 현상은 우려스럽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남들이 좋다는 대로 사회적 조건만을 좇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자연적 환경은 외면하기 일쑤다. 소년의 어머니와 같은 뼈아픈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면 ‘좋은’ 환경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심사숙고를 해봐야 한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이은희 씨는 글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젊은 과학도. 기업연구원, 과학전문기자를 거쳐 과학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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