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전 의문사’ 恨 푼 사죄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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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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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정렬 씨, 軍의문사위 통해 ‘兄 구타사망’ 확인

가해자 “평생의 짐… 죄송” 김씨 “사실 털어놔줘 감사”

군 복무 중 자살로 처리됐던 형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동생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32년 만에 밝혀졌다.

1977년 10월 2일 경기 북부의 한 부대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하던 김성환 상병(당시 26세)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동생 자취방을 찾았다. 고향인 충남 청양에서 서울로 유학 온 열 살 아래의 동생 개그맨 김정렬 씨(48·사진·당시 16세)를 보기 위해서였다.

선임병이 외박을 나간 틈을 타 부대를 몰래 빠져나온 김 상병은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얘기꽃을 피우며 밤을 새운 뒤 다음 날 새벽 부대로 복귀했다.

하지만 며칠 뒤 김 씨 가족은 부대에서 성환 씨가 숨졌다는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부대 측은 김 씨 모친에게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은 채 ‘빨리 화장하면 국립묘지에 묻어주고 연금도 받게 해주겠다’며 조속한 사망 동의를 요구했다. 결국 성환 씨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처리됐다.

30년 넘게 형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던 김 씨는 2006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자 진상 규명을 요청했고 3년 만인 지난달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 의문사위 조사결과 당시 부대로 복귀한 형이 선임병에게 무단이탈을 이유로 심한 구타를 당해 심장마비로 숨진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김 씨는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군 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가해자를 직접 만났다. 가해자는 “죄를 짓고 평생 짐을 지고 살았다”며 사죄했다. 김 씨는 “이제라도 사실대로 말해줘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1일 “형님의 명예가 회복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그동안 화병으로 고생하신 어머니께도 위안이 되어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군 관계자는 “군 복무 중 상해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라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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