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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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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DJ)이 13일 ‘도쿄(東京) 생환’ 36주년 기념일을 병상에서 맞았다. 이날 오후 4시 DJ가 입원 중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6층 예배실에서는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 미사가 열렸다. 양홍 신부가 집전을, 함세웅 신부가 강론을 맡았다. 두 사람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에 연루돼 DJ와 함께 고초를 겪은 인연이 있다.
앞서 오후 2시에는 DJ가 누워 있는 중환자실에서 서울 서교동 성당 윤일선 주임신부 주관으로 이 여사, 차남 홍업, 삼남 홍걸 씨 등 직계가족만이 참석한 가운데 10여 분간 ‘생환 기념 가족 기도회’가 열렸다.
윤 신부가 DJ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문을 낭독하자 이 여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기념 케이크에 한 개의 초를 밝혔고, 이 여사는 남편을 대신해 촛불을 껐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야당인 신민당 후보로 나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빙 승부를 펼친 끝에 패배한 뒤 일본에서 지내던 DJ는 1973년 8월 8일 도쿄 팔레스호텔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돼 동해에 수장(水葬)될 뻔했다가 미국의 도움으로 구출됐으며 5일 뒤인 13일 밤 동교동 사저 앞에서 발견됐다. DJ와 가족들은 8월 13일을 ‘제2의 생일’로 여기고 매년 기념행사를 가져왔다.
한편 이날도 외국 사절 등 각계 인사들의 병문안이 끊이지 않았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은 쾌유를 기원하는 편지를 이 여사에게 전달하면서 “36년 전 오늘 죽음의 길에서 살아나신 것처럼 회생하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는 이 여사에게 “또 한번의 기적이 이뤄질 것”이라고 격려했다.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외교관인 유든 대사는 DJ가 입원하기 직전에도 동교동 사저를 찾아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해온 데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었다. DJ는 2007년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를 위해 써달라며 1만 달러를 내놓았고 5월엔 망명 중인 미얀마 국회의원연맹 회장 일행을 만나 미얀마 민주화 문제를 논의했다.
2007년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행사에서 연설한 인연이 있는 한국계 소년 환경운동가 조너선 리(12)도 병원을 찾아 이 여사에게 ‘대통령님 힘내세요’란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전달했다. 조너선 리는 “김 전 대통령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의 가족들과 기도회를 열어 쾌유를 기원했다”고 위로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2007년에 ‘북한에 밤나무를 심으러 가자’고 약속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쾌차하면 함께 가자”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