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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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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걷던 아이를…. 한마디로 치가 떨립니다.”
15일 오후 광주 북구 일곡동 상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편도 2차선 도로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박모 씨(45)는 그날의 끔찍한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박 씨는 4일 어둠이 깔릴 때쯤 길을 건너던 초등학생 A 군(11)이 승합차에 치인 것을 멀리서 목격했다.
운전자가 울면서 달려가는 초등생을 달래 승합차 뒷자리에 태우고 가는 것을 보고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다. 1주일여가 지난 뒤 박 씨는 교통사고를 낸 이모 씨(48)가 A 군을 공기총으로 살해했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믿겨지지 않았다. 13일 진행된 현장검증을 보고서야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됐다는 박 씨는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인근에서 과일상을 하는 정모 씨(56·여)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정 씨는 운전자가 다친 아이를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알고 큰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내가 나서서 병원으로 데려갔을 텐테…”라며 안타까워했다.
A 군이 다녔던 학교도 큰 슬픔 속에 빠져 있다. A 군의 영구차는 13일 학교에 들렀다. A 군 부모는 아들에게 세상과 작별하기 전 마지막으로 학교를 보여주고 싶었다. A 군의 마지막 등굣길은 유족과 교직원 등 30여 명이 지켜봤다.
장례를 치른 지 이틀이 지났지만 학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제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충격을 받은 담임교사는 15일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대신 수업을 맡은 교사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 수업을 진행했다.
교실 맨 앞자리에 놓인 A 군의 책상에는 친구들이 갖다 놓은 조화가 놓여 있었다. 실종 소식을 듣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았다는 한 친구는 “꼭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학생들의 등굣길에는 학부모들이 아이를 직접 데려다 주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음주운전과 무면허 운전으로 2년간 면허시험 응시자격을 박탈당했던 이 씨는 올해 9월 자격제한이 풀려 면허시험에 응시할 예정이었다. 인테리어업자인 이 씨는 음주운전으로 다시 적발되면 형사처벌은 물론 면허 취득마저 어려워질 것 같자 A 군을 치료하려던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경찰에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내가 운전면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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