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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영중]뤽 베송의 '잔다르크'/인간적 감동 뭉클

입력 2000-02-28 19:51업데이트 2009-09-23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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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의 신비는 생각할수록 수수께끼이다. 거기에는 17세의 소녀가 군대를 지휘했던 페미니즘의 문제, 죽음의 가시밭길이라도 신의 소명에 따른다는 인간의 의지 문제, 구국의 여성을 적국에 팔아넘긴 정치와 음모의 대 서사시가 도사리고 있다.

잔다르크 영화는 거장 감독들이 저마다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내보인 일종의 시험대이기도 했다. 현재 상영 중인 뤽 베송 감독의 야심작 ‘잔다르크’는 화살을 맞아도 아픈 줄 모르고 병사들을 독려하는, ‘행동하는’ 잔다르크를 탄생시켰다. 둥그런 사발머리에 조울증 환자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이 잔다르크는 일면 소년 같고, 일면 비정상적인 광인의 모습으로 스크린을 질주한다.

지금까지 잔다르크에 관한 가장 뛰어난 영화라면 칼 드레이어 감독의 ‘잔다르크의 열정’(1928년)과 로버트 브레송 감독의 ‘잔다르크의 재판’(1962년)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영화 모두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수작들. 칼 드레이어의 영화에서 잔다르크는 시종일관 눈물을 흘리는 고뇌에 찬 인간으로 나온다. 수수한 이미지의 배우 마리아 팔코네티가 연기하는 잔의 얼굴 클로즈업은 음모와 모략으로 귓속말을 일삼는 신부와 재판관들의 얼굴과 병행 편집된다. 탐욕스러운 인간의 제도가 어떻게 한 순결한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드레이어의 잔다르크는 철학자 질 들뢰즈로부터 ‘절규하는 소리가 나는 무성영화’란 호칭을 받았다. 반면 브레송 감독은 잔다르크를 인간에서 초월적인 성녀로 끌어올린다. 브레송의 잔다르크에는 인간이 자신의 예정된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선택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구원과 진리의 문제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같은 잔다르크들이 흥행보다 예술적 성공에 이정표를 그었다면, 뤽 베송의 ‘잔다르크’는 프랑스에서 ‘스타워즈’를 몰아내는 흥행 성공을 거두었고, 국내에서도 역시 흥행 호조를 보이고 있다. 뤽 베송의 전략은 거장들의 깊이에 장대한 스펙터클로 백년 전쟁의 들판을 보여주는 것. 유럽의 작가주의와 할리우드의 전략을 ‘잡종교배’한 이 희한한 잔다르크의 성공에는 누벨 이마주의 적자 ‘뤽 베송’ 표가 관객을 배반한 적이 없다는 신뢰도 들어가 있는 것 같다. 하긴 잔다르크는 누가 만들어도 잔다르크이다. 고뇌와 구원과 광기로 감독마다, 시대마다, 그 색깔은 다르지만 잔다르크의 신비에는 프랑스를 넘어선 어떤 울림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신분도 지식도 남녀의 성도 뛰어넘는 진심어린 한 인간의 힘, 순수한 내적인 힘을 전해준다. 이는 또 ‘진실과 용기와 애국심’을 보여준 한 인간이 주는 보편적인 감동이기도 하다.

심영섭(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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