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시국선언 핑계로 취소한 ‘대입 개선 발표’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9일 아침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담당 실무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로부터 ‘느닷없는’ 통보를 받았다. ‘전국 대학 총장 일동’ 명의로 이날 오전 10시에 하기로 한 ‘대학입시 전형 선진화를 위한 공동선언’ 발표를 취소하겠다는 통보였다. 손병두 회장(서강대 총장)을 비롯한 대교협 회장단은 직접 낭독하겠다며 전날 언론사에 선언문 전문까지 배포했다. 교과부는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전 선언문 내용을 전해 듣고 청와대 보고까지 마친 뒤라 더욱 그랬다.

선언문은 대입 발전을 위한 총장들의 다짐과 이를 위한 8가지 실천 과제를 담았다. 고교와 대학의 협력을 강화하고, 입학사정관 전형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내용이다. 200개 대학이 합의점을 찾자니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단 모든 총장이 처음으로 입시 발전에 뜻을 합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당연히 ‘총장들이 왜 선언문 발표를 미루느냐’를 놓고 설왕설래(說往說來)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이유가 알려졌다. 전날 밤 대교협 회장단이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는데 총장들이 그에 대한 의견은 내놓지 않고 입시 문제를 논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내일이면 6·10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등 여러모로 입시 관련 발표를 하기에 부적절하다” “기자회견을 하면 시국선언에 대한 질문이 나올 텐데 (총장들이) 대답하려면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정부의 대입 자율화 기조에 따라 대교협은 교과부로부터 입시 업무를 넘겨받았다. 총장들이 그렇게도 강조하던 ‘권한’을 얻은 것이다. 당연히 국민은 그에 합당한 ‘책임과 능력’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입학사정관 전형 확대를 비롯해 대교협의 역할과 책무가 무척 중요한 시기다. 그런데 시국선언이라는 정치적 사안을 들어 국민적 관심사인 입시 발전 선언을 미루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행태인가 하는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교과부 장차관까지 격분했다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엉뚱한 데 촉수를 뻗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저버리는 것은 무책임의 전형이다. 선언문 발표 연기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던 일부 대학 총장은 회장단의 정치적인 저의를 의심하기도 했다. 한 지방대 총장은 “시국선언과 대학 입시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볼 일”이라고 비꼬면서 “이런 식으로 불신을 자초하다가는 자율권을 뺏겨도 할 말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균 교육생활부 for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