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을 쫓아다니는 사나이’ 조환복 주멕시코대사

  • 입력 2009년 5월 4일 11시 50분


"전염병이 저를 따라오는지 아니면 제가 전염병을 따라다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조환복 주 멕시코 대사의 얘기다. 직업 외교관인 그는 2000년대 들어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은 3대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그 지역 공관에서 근무하는 기묘한 경력을 갖게 됐다.

조 대사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발생했을 때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경제공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2005년 홍콩에서 확산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세계가 떨고 있을 때는 홍콩총영사였다. 올해 3월 멕시코대사로 부임한 그는 이제 신종 인플루엔자A(H1N1)에 대처해야 할 상황이다. '기구한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를 두고 외교통상부에선 '전염병을 쫓아다니는 사나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멕시코 현지 교민들의 안전문제를 다루고 있는 조 대사와 두 차례 전화로 인터뷰했다.

-현재 멕시코 상황은 어떤가.

"갑자기 불거진 인플루엔자A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입원자 사망자 의심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멕시코 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사망자 숫자가 이젠 잠시 주춤한 상황이지만 감염자와 의심환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멕시코 국민에게 이번 사태가 미치는 파장은 어떤 것인가.

"멕시코는 과거에 전염병 확산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갑자기 터진 인플루엔자A 문제로 당혹해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멕시코의 정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지만 이번 전염병의 공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잠시 통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환자나 의심환자들을 격리시키고 있다. 각종 문화 체육행사는 물론이고 일요일 미사도 중지시킬 정도다."

-멕시코 정부의 대책은 어떤 것인가.

"멕시코 정부는 긴급보건위원회를 열어 연일 대중집회 금지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5일까지 긴급한 필수분야를 제외하곤 경제활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국민에게 '집이 제일 안전하니 집에 있으라. 당분간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말했다. 노동절 등 휴일이 많이 끼어있지만 5일까지는 학교도 휴교하고 식당과 정부기관의 문을 모두 닫는다. 멕시코 정부는 닷새가 인플루엔자A 확산을 잡을 수 있는 중대시기로 생각하고 있다."

-변화가 많이 느껴질 정도인가.

"길거리의 교통량이 30% 줄었고 개인위생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늘었다. 식당도 오후 6시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못하고 점심시간에도 손님을 50명 이상 받지 못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도 40% 줄었다. 멕시코 정부는 상황이 더 악화되면 지하철 운행을 중단하고 공항을 폐쇄하는 강한 조치를 내부적으로 검토하지만 아직 그 단계는 아닌 듯 하다. 멕시코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5월에 예정됐던 각종 행사를 취소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진도 발생해 시내 통신망이 일부 불통되기도 했다."

-세계를 뒤흔드는 전염병 발생지에 잇달아 부임하게 됐는데….

"중국에 근무할 때 사스가 발생해 사스대책반장을 맡았고, 홍콩에 갔더니 난데없이 조류독감이 생겨서 혼이 났는데 이곳에 오니 들어보지도 못했던 인플루엔자A가 발생했다. 그런 경험이 있다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뭐라 할지 모르겠다."

-베이징의 사스와는 다른 점이 있을 텐데….

"중국은 초기에 사스 발생 사실을 숨기다가 정부 불신이 확산되면서 사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사스가 어떤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돼지인플루엔자는 알려진 질병이다. 타미플루라는 치료제도 있다. 멕시코 정부가 초기 대응엔 미숙했지만 중국과 달리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한국교민들이 주로 영업을 하는 장소가 인구 밀집지역이어서 걱정일 텐데….

"멕시코시티에는 7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고 멕시코 전체에는 상사 주재원을 제외한 교민이 1만2000명 정도다. 시내의 소나로사 지역은 주로 식당이나 미용실, 빵 가게 등 서비스 중심 업종이 자리하고 있다. 센트로 지역은 시장이어서 주로 의류 양말 모자 등 작은 가게들이 많다. 센트로 지역이 밀집되고 다수가 드나드는 곳이어서 좀 더 취약하다. 그래서 지난달 28일엔 한인회 직능대표들과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가능하면 영업을 단축하거나 휴무를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교민 안전대책은 어떻게 세우나.

"개인 청결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개인 청결로 5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스가 발생했을 때에도 우리 교민들이 협조를 잘 해주셨다. 한인들을 중심으로 사기가 꺾인 중국인들을 북돋아주고 중국 정부에 협조한 결과 중국 정부가 감사의 뜻을 나타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질병에는 한인, 멕시코인 차이가 없다. 사람 생명과 관련된 일이니 한인들도 경제활동에 조금 영향을 받더라도 모범적으로 권고사항들을 준수해 질병퇴치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전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의 사무실로 각종 행사를 취소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조 대사는 잠시 다른 전화를 받더니 "지금 태권도협회 총재가 멕시코에 오는 것을 취소했다는 연락이 왔네요"라고 말했다.)

-교민들 가운데 귀국하는 분들도 있나.

"교민들은 아니고 상사 주재원의 가족 일부가 본사와 협의해 귀국하는 사례는 있다. 그러나 아직은 소수고 나머지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방 교민들 안전대책은 어떻게 하고 있나.

"대사관 소속 영사가 과달라하라, 티후아나 지역 등에서 상황을 점검하고 청결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애니깽으로 이곳에 왔던 한인 후손들은 대부분 인플루엔자A 창궐지역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동남부의 메리다 지역에 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 신임장도 못 받았는데….

"3월 중순에 부임했기 때문에 6월 초에는 신임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가 워낙 크게 벌어지다보니 시기가 늦어질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 교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조 대사는 인터뷰 말미에 과거 중국에서 사스 때 느꼈던 고립감이 떠오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인플루엔자A가 빨리 사라지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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