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돈 건넨 방법-정황 낱낱이 진술… 盧, 궁지로 몰려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2분


檢 “이광재에 돈 준뒤 강아지와 논일까지 얘기”

盧 “중요한 것은 증거”… 대질신문 가능성도

대검 중앙수사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검찰에서 한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세 번째 글에서 박 회장의 진술을 언급하면서 “중요한 것은 증거다”라며 검찰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박 회장의 진술에 대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저는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할 것”이라며 검찰의 수사 방법까지 문제 삼았다.

▽“돈 건넨 뒤 강아지하고 논 것까지 진술”=홍만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13일 “검찰이 수사하는 부분은 정치적인 부분이 아닌 사법의 영역이고, 장외에서 논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노 전 대통령과 대결하는 양상이 빚어지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서 6명을 구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됐던 박 회장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홍 기획관은 “자금 추적을 통해 돈이 누군가에게 흘러들어 갔다는 중요한 증거를 발견했을 때도 이 증거 자체는 ‘뇌물을 그에게 공여했다’는 피의자의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확고한 진술과, 그 진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증거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검찰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수사 과정에서 나온 박 회장의 진술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일관될 뿐 아니라, 또 그 진술에 따라 수집된 증거들도 진술과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

검찰 조사에서 박 회장은 민주당 이광재 의원에게 돈을 건넨 것과 관련해 자신의 사소한 행동까지도 정밀하게 진술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베트남에서 이 의원과 한모 전 의원, 원모 보좌관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 의원이 돈 받는 것을 거북스럽게 생각할까 봐 자리를 피해줬다는 것. 박 회장은 “일단 5만 달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건물 밖 정원으로 나가 강아지와 놀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회장의 이 진술이 허위로 만들어내기도 힘들 정도로 구체적이라고 판단했고 베트남에 동행했던 한 전 의원 등을 조사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의 혐의와 관련해서도 이와 비슷한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하고, 베트남에 동행했던 김덕배 전 의원(당시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체포해 조사했다. 추가 진술과 증거 확보 과정에서도 검찰은 박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재차 확인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또 검찰 조사에서 모 인사에게 1만 달러를 줄 때를 설명하면서 “골프장에서 나오면서 왼쪽 호주머니에 100달러짜리 100개를 넣어줬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인사에 대해선 “소공동 롯데호텔 38층 식당에서 쇼핑백에 든 5만 달러를 건넸다”는 식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선 “1만 달러짜리도 그렇게 상세하게 얘기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받았다는 500만 달러는 어떻게 진술했겠나”라는 얘기가 나왔다.

▽노무현-박연차 대질신문할까?=그동안 검찰은 한나라당 박진 의원과 민주당 이광재 의원 등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경우에 박 회장과 대질신문을 벌였다. 그러나 대질신문에선 불법자금 공여자와 수수자가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피의자가 원하지 않으면 대질신문을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국가 원로 대우를 받는 김 전 국회의장과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조사할 때도 예우상 대질신문까지 가는 것을 꺼렸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현재까지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기 때문에 검찰은 일단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이 대질신문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검찰은 전 국회의장보다 더 높은 예우가 필요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 방식을 놓고 고심하는 상황이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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