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할아버지 자취 따라 조국사랑 대장정 나섭니다”

  • 입력 2009년 3월 25일 02시 57분


《중국 상하이(上海) 구도심의 푸칭리(普慶里) 4호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정이 시내를 전전하다 1926∼1932년 상하이 시절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23일 오전 11시경 청사를 둘러보는 최민석 씨(23·사회복무요원)와 윤지애 씨(22·덕성여대 2년)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시 모습으로 복원돼 있는 의자 책상 등 집기 하나하나를 유심히 들여다봤고, 임정 요인들의 글과 사진 등을 모은 3층 자료 전시실에선 무언가를 발견해내려는 듯 자료를 꼼꼼히 살폈다.

두 사람에게는 이곳이 각별한 장소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할아버지의 숨결과 조국애(愛)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임정청사 찾은 최민석-윤지애 씨

“절체절명의 위기서 목숨바쳐 독립운동…절로 고개 숙여져요”

최 씨의 할아버지 고 최기옥 선생과 윤 씨의 외할아버지 석근영 선생(89)은 일제강점기 광복군 소속으로 상하이와 충칭(重慶)을 오가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

두 사람의 꼼꼼한 눈길은 할아버지의 자취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임정 수립 9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화학술원이 공동 주관하고, 국가보훈처가 후원한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탐방 행사에 다른 독립유공자 후손 8명과 함께 참여했다. 상하이 임정 청사는 첫 방문지. 이 행사에는 진덕규 이화학술원장, 신용하 한영우 박경서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등도 참석했다.

최 씨는 “할머니께선 할아버지 제사 때면 손자들을 앉혀 놓고 할아버지의 공적 사항을 읽도록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최 씨는 할아버지의 공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라는 사실 정도만 알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중국에서 광복군 활동을 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언젠가 꼭 한 번 할아버지의 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최 씨는 “청사에서 윤봉길 의사에 관한 자료를 읽으면서 할아버지 얼굴을 떠올렸다”며 “‘오늘 잡히면 이제 끝이다’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과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할아버지의 당시 상황을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최 씨는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보여줄 사진을 찍느라 청사 주변을 오가며 연방 셔터를 눌러댔다.

윤 씨의 외할아버지 석근영 선생은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차출되자 탈출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윤 씨도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외할아버지가 한 일을 마음 깊숙이 느끼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외할아버지가 광복군 소속으로 활동하셨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뒤늦게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제 상하이 출발

항일 발자취 탐방

외할아버지는 윤 씨가 어릴 때 윤동주 시집, 백범 일지, 안창호 전기 등을 사주며 읽어보라고만 했을 뿐 자신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직접 느껴보라는 뜻이었지만 어린 시절의 윤 씨는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던 외할아버지가 이번에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꼭 다녀오라”고 권했다.

윤 씨는 이날 하루 상하이의 크고 작은 건물과 거리, 좁은 골목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는 “외할아버지와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곳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것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청사를 둘러보던 윤 씨는 “임정 요인들이 이렇게 좁은 곳에서 온갖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활동했다는 사실을 직접 대하니까 저절로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진 속 독립운동가 중 상당수는 지금의 우리 나이인데 과연 나라면 독립을 위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을까”라고 말했다.

최 씨와 윤 씨는 상하이에서 받은 첫인상을 가슴에 담고 24∼29일 항저우(杭州), 창사(長沙), 충칭 등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두 사람은 이번 행사에서 90년 전 ‘젊은 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던졌던 헌신적인 열정을 꼭 마음에 담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90년 전 그들의 헌신으로 얻게 된 독립된 민주국가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에 대해서도 찬찬히 생각해볼 작정이다.

“솔직히 할아버지나 다른 분들이 당시 느꼈던 심정을 그대로 느낀다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때와 지금은 모든 게 다르니까요. 하지만 최대한 느껴보려 합니다. 이 넓은 중국 땅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상하이=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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