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키워줄 든든한 언니가 생겼어요”

  • 입력 2009년 3월 9일 02시 57분


‘2009 함께 하는 희망 찾기-변호사님과 친구 됐어요’ 캠페인을 통해 자매결연을 맺은 김영지 변호사(28·법무법인 율촌·왼쪽)와 중학교 3학년생 현아(가명·15) 양이 6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음식점 휴게실에서 서로에게 공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다. 박영대 기자
‘2009 함께 하는 희망 찾기-변호사님과 친구 됐어요’ 캠페인을 통해 자매결연을 맺은 김영지 변호사(28·법무법인 율촌·왼쪽)와 중학교 3학년생 현아(가명·15) 양이 6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음식점 휴게실에서 서로에게 공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다. 박영대 기자
김영지 변호사와 의자매

변호사 되고싶은 현아양

■ 金변호사… 4년전 돌아가신 엄마가 남 도우라고 말씀하셨어

■ 현아…저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약속 지키는 사람 될게요

서울 강서구에 사는 현아(가명·15·중3)는 공부 욕심이 많다. 중1 때까지는 전교에서 6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과 영어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유명 학원에서 고교 과정을 미리 배운다는데 현아에겐 EBS 인터넷 수업이 유일한 과외선생님이다. 요즘은 이마저 여의치 않다. 옆집에서 얻어 온 10년 된 컴퓨터가 자주 말썽을 부린다.

현아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울면 엄마(40)가 더 미안해하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빠가 보고 싶어도, 친구가 최신 MP3 플레이어를 자랑해도 잘 견뎌왔다. 하지만 지난해 2학기 말 성적표를 받아들고 참았던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가 일을 나간 사이 외할머니(77) 병 수발을 하며 틈틈이 중고 참고서를 여러 번 풀어보았지만 성적은 더 떨어졌다.

8년 전 아빠가 집을 나간 뒤 엄마는 약국에서 사무보조 일을 한다. 하루에 7시간 넘게 서서 일하지만 월급은 90만 원 남짓.

현아는 전문계 고교를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변호사나 한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딸의 꿈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최근 학교를 찾아가 한 번 더 장학금을 신청했다. 직장이 있다는 이유로 현아네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못 받고 있다.

그런데 얼마 뒤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동아일보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와 저소득층 학생을 일대일로 연결해주는 지원 사업에 선발된 것이다.

현아의 후원자는 법무법인 율촌의 김영지 변호사(28·여). 이화외국어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새내기 변호사다.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현아를 돕기로 한 것은 돌아가신 엄마와의 약속 때문이다.

6일 오후 8시 현아가 사는 동네의 한 음식점에서 김 변호사와 현아가 처음 만났다. 쭈뼛쭈뼛하던 현아에게 김 변호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머, 현아는 이름이 예쁘네. 언니는 이름 때문에 ‘영지버섯’이라 놀림을 하도 많이 받아 아예 명찰을 교복 속에 숨기고 다녔어.”

현아는 그때서야 15세 소녀다운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을 알게 된 둘은 통하는 게 많아 2시간 넘게 수다에 푹 빠졌다. 김 변호사의 고교 시절 이야기와 공부 비법이 주된 화제였다.

이를 지켜보던 엄마가 “변호사님 피곤하시니깐 그만 일어나자”고 재촉했다. 티격태격하는 모녀를 보던 김 변호사는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언니도 현아처럼 엄마가 가장 좋은 친구였어. 변호사가 된 딸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엄마가 2005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뒤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어. 교만하지 말고 남을 돕는 변호사가 되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아.”

마주앉은 현아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김 변호사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깜짝 선물’을 꺼냈다. 최신형 학습기 전자사전이었다. 현아는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선물에서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언니, 정말 고마워요. 열심히 공부해서 언니같이 약속을 지키는 변호사가 꼭 될게요.”

동생이 없는 김 변호사는 이날 자신보다 키가 큰 동생을 얻었고 외동딸인 현아는 고민을 털어놓을 든든한 언니가 생겼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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