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화염병 불씨 시너 옮겨붙어” 철거민 “왜곡수사”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 검찰이 밝힌 사건 전말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2일 “농성 참가자의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났다”고 발표하고 농성자 5명을 구속했다. 또 경찰의 과잉 진압 여부와 점거 농성 배후 수사에 나서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철거민 측은 “왜곡 수사”라고 반발하며, 농성 강제 진압의 책임자인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사법처리를 요구했다.》

“골프공 1만개 - 화염병 400개 - 염산병 50개 등 치밀한 준비

농성자가 화염병 던졌는지, 실수로 떨어뜨렸는지는 불확실”

경찰특공대 투입-내부규칙 위반 여부도 조사할 계획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용산 철거민 참사의 화재 원인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는 22일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농성 현장의 망루 4층으로 피한 농성자들이 갖고 있던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난 것 같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화재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과 동시에 점거 농성을 배후에서 도운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지, 경찰의 진압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화염병에 의한 화재…고의는 아닌 듯”=검찰은 현장감식 결과가 나와야 화재 원인을 확정할 수 있지만 일단은 망루 4층에서 최후까지 경찰의 진입을 막던 시위대가 사용한 화염병이 불씨가 돼 망루 3층에 있던 시너 통에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했다.

고의로 화염병을 던졌는지, 실수로 떨어뜨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화재의 불씨는 ‘화염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당시 정황과 관련자 진술을 종합해 볼 때 경찰이 화재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보았다.

검찰은 현장에서 연행된 점거 농성자 25명과 진압작전을 폈던 경찰특공대원들을 조사했으나 화재가 일어난 순간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연행자 가운데 시너를 망루 안팎에 뿌렸다거나 화염병을 들었다고 인정한 사람도 없었다.

▽과잉 진압 여부와 점거농성 배후도 수사=검찰은 설 연휴 기간에도 수사를 계속해 이번 사건의 전말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낸다는 방침이다. 화재 원인뿐 아니라 건물 기습 점거가 이뤄진 과정과 경찰의 진압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모두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연행된 농성자들을 조사한 결과 ‘용산 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8∼11월 간부 6명이 1인당 1000만 원씩 갹출해 6000만 원을 모으는 등 점거농성을 준비했다.

이들은 대책위원장인 이모(입원 중) 씨의 지시로 점거농성 직전인 이달 14∼16일 새총을 이용해 발사할 골프공 600개들이 17포대, 유리구슬, 쇠톱, 망루를 짓는 데 필요한 공구, 20일 분량의 생필품, 액화석유가스(LPG) 등을 사들였다. 여성 회원 2명은 화염병 400개와 염산병 50개를 만들었다. 15일에는 인천 남구 도화동의 한 고물상에서 3차례에 걸쳐 망루를 짓는 예행연습도 했다.

시위대는 19일 오전 5시 반경 용산 남일당빌딩에 진입한 뒤 크레인을 이용해 망루를 짓는 데 필요한 함석, 합판과 비계를 옥상으로 끌어올렸다. 망루를 설치한 뒤 시위 물품과 발전기를 돌리는 데 필요한 세녹스(유사 휘발유) 80통 등을 망루 안에 들여놓았다.

검찰은 점거농성을 기획하는 과정에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의 한 간부가 도움을 준 것으로 보고, 이 간부에 대해 일반건조물 침입 모의 혐의 등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은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에 대해서도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이 적절했는지, 진압작전 과정에서 내부규칙을 위반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진압에 나섰던 특공대원 전원을 조사한 데 이어 현장지휘를 한 경찰 간부들과 그 윗선까지 차례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구속된 사람들은 누구?=화염병을 던지는 등 폭력시위를 벌인 혐의로 22일 구속된 사람은 5명이다. 이 가운데 용산 4구역 세입자는 2명이고, 나머지 3명은 다른 지역 철거민을 대표해 참가한 전철련 회원들이다.

시위대가 건물을 기습 점거하고 불을 낸 데 대해서는 일반건조물 침입과 일반건조물 방화, 화염병 사용 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특히 불이 난 뒤에 검거된 김모 씨 등 3명에 대해서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가 적용됐다. 누가 불을 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3명 모두 망루 화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이 나면 자신들도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해 고의로 불을 낸 것은 아니라고 보고 ‘방화’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김 씨 등은 22일 오후 8시 50분경 구속영장이 집행돼 서울구치소로 떠나기 전 “억울한 점이 많다. 우리는 테러집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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