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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월 20일 1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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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재개발에 반대하며 철거상가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철거민과 진압하던 경찰이 충돌해 철거민과 경찰 등 6명이 숨지고 23명이 부상했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지역 4층 건물에서 이틀째 점거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은 경찰 진압에 화염병을 던지며 맞섰고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너에 불이 옮겨 붙으며 불길 치솟아
경찰과 목격자들에 따르면 전날 새벽 4시경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과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 회원 30여명은 이 건물을 기습 점거한 채 이틀째 농성을 벌여왔다. 이들은 진압하려는 경찰에 저항해 화염병과 염산병을 던지고 새총을 쏘며 맞서왔다.
경찰은 이날 오전 6시45분경 기중기에 매단 컨테이너에 특공대원을 태워 건물옥상에 진입시킨 뒤 본격적인 진압작전을 벌였다. 철거민들은 진압을 시도하는 경찰을 향해 시너를 뿌린 뒤 화염병을 투척하며 저항했다. 이때 경찰 6명이 화상을 입어 철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를 위해 대량으로 준비했던 망루 밑 시너에 불이 옮겨 붙으며 옥상 전체에 화재가 발생했다.
◇망루 무너지며 6명 사망 23명 부상
불길에 철거민들이 옥상에 설치한 5m 높이의 망루가 무너지면서 철거민으로 추정되는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철거민 1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불명 상태고 5명은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특공대 4명 등 17명이 화상을 입은 채 인근 한강성심병원, 순천향병원 등 4곳으로 후송됐다.
앞서 경찰은 현장에 투입된 서울지방경찰청 특공대 1제대 소속 김모(32) 경장이 실종돼 신원확보에 나섰다.
◇사망자 정확한 신원 아직까지 확인 안 돼
사망자 가운데 일부는 불에 그슬려 정확한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용산경찰서는 이날 낮 12시 브리핑을 통해 “현재까지 사망자는 경찰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으로 확인됐다. 사망한 경찰이 진압 현장에 투입돼 연락이 두절된 특공대원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낮 12시 40분께 사고현장에서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돼 사망자는 모두 6명으로 늘어났다. 사망한 경찰도 실종됐던 특공대 소속 김모 경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망루 근처에서 철거민으로 보이는 시신 5구와 경찰복을 입은 시신 1구가 발견됐고 철거민 한 명은 건물에서 뛰어내렸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목격자들 “갑자기 큰 불꽃이 망루 전체로 번졌다”
목격자들은 “망루 안쪽에서 작은 불꽃이 한두 차례 생겼다가 꺼졌으나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큰 불꽃이 망루 전체로 번졌다”며 “불이 시너 같은 인화물질에 옮겨 붙은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농성을 벌였던 철거민들은 “강제철거를 하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면서 “서울시가 임시주택과 상가를 만들어 거주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이날 진압을 위해 18개 중대 1400여명과 경찰특공대 49명을 투입했다. 오전 8시30분경 철거민 2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이날 시위는 마무리됐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사거리에서 용정사거리구간 양방향이 통제돼 한강대로를 지나는 차량들이 용산역으로 우회하면서 이 지역 일대는 극심한 출근길 교통정체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빨리 진상파악해 보고하라”
이명박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파악을 긴급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중 민정수석을 통해 상황을 보고받은 뒤 “빨리 진상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와 관련해 “일단은 진상규명이 우선이고 책임소재 파악은 나중에 가리게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사고경위 및 사망자 현황 등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정병두 1차장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10여명의 수사본부를 긴급구성 해 수사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사상자가 많고 사안이 중대해 직접 수사본부를 차렸다”면서 “현재 검사 3명이 현장에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김석기 신임경찰청장 거취 관심
이번 사건이 김석기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내정자는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맡고 있다.
민주당은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이날 사고를 ‘용산 참극’으로 규정하고 이명박 정부 내각의 총사퇴와 함께 임명절차를 밟고 있는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현직인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미 사의를 표명하고 사실상 현직에서 발을 뺀 상태이기 때문에 경찰의 책임론이 불거진다면 김석기 청장이 그대로 화살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진압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서울지방경찰청 직할이라는 점에서 김 청장이 비판 여론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서울청장의 경찰청장 임명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정주희 동아닷컴 기자 zoo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