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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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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교육현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24조에는 ‘교육감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당해 시도지사의 피선거권이 있는 자로서 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일부터 과거 2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이어야 한다’며 정치 중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 관계자들은 28일 열린 서울시당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판할 중요한 선거이니 지역에서 당원들이 적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민주당 이미경 최고위원은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어느 후보가 가장 올바른 정책을 펼지 민주당도 판단을 갖고 있다”며 “이번 선거는 줄 세우기 교육, 사교육비 증가시키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했다.
○ 정치권 교원단체 선거 개입 논란
정치권의 교육감 선거 개입 논란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14일 민주당 최규식 서울시당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선거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포기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어떠한 후보도 서울 시민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 당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6일에는 당의 교육정책과 다른 정책을 내세운 공정택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당원을 철수시키라는 공문을 지역위원장과 사무국장에게 보내면서 공 후보와 주경복 후보의 공약을 민주당의 교육정책과 비교한 표를 포함시켰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이 특정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 평가해 당원에게 고지하는 행위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17일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도 “현재 후보자들을 보면 한나라당의 교육 이념과 비슷한 포지션을 가진 후보가 난립해 있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심대한 결과가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 ‘정치 선거’ 닮아 가는 교육감 선거
정치권까지 개입하는 과열로 이번 선거는 정치권 선거 못지않게 혼탁해지고 있다.
정책과 공약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고 각 후보 진영은 ‘세(勢)’ 불리기와 상대방 흠집 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공 후보 진영은 25일 보수단체 300여 개를 포함해 400개가 넘는 단체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 냈다. 지지 선언에 참가한 단체 중 상당수는 교육과 관련이 없는 단체들이다.
이에 질세라 주 후보도 진보진영 주요 인사 1300여 명의 지지를 포함해 300여 개 진보 단체의 지지를 얻어냈다.
28일에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 등 3개 단체는 주 후보를 지지하는 교수선언문을 발표했고 학부모 단체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과 ‘좋은 학교 바른 교육 학부모회’도 공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불법 선거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26일 민주노총이 주 후보를 지지하는 불법 인쇄물을 제작해 배포하다 서울시선관위에 적발돼 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시선관위는 주 후보가 지난달 22일 민주노동당의 행사에 참여해 당원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주 후보 진영에서는 공 후보가 교육감 직위를 이용하여 교육청 직원들을 동원해 학부모 정보를 수집하는 등 ‘관권 선거’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높아지는 선거 개선 여론
정치권의 노골적 선거 개입에 대해 권대봉 고려대 교수는 “선거제도 자체가 정치에 함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현행 직선제는 누가 되더라도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초빙 형태로 교육감을 임명한다”며 “3년 정도 임기를 보장하고 성과에 따라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당공천제나 러닝메이트제도를 도입해 공정한 룰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계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정치권의 정당공천제 등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처사”라며 “법으로 막아 놓고 있는 지금도 대리전 양상이 전개되는데 그런 제도가 도입되면 대놓고 각축전이 벌어져 교육 정책 선거는 더욱 실종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흥주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분권연구실장도 “정치적 노선이 없던 사람도 정치권 개입 때문에 대립구도를 벌이게 된다”며 “교육행정은 교육적 논리에 따라야지 이념적인 판단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이진아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