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 깃발 등장…붉은 손수건 두르고 행동통일

  • 입력 2008년 6월 29일 20시 38분


서울 태평로 일대에서 28일부터 29일 오전까지 열린 '1박2일' 주말 집중 집회는 화염병과 최루탄만 난무하지 않았지 '1980년대의 시위'를 방불케 했다.

시위대는 이날 가두시위를 막는 경찰을 향해 쇠파이프와 쇠꼬챙이 망치 등을 휘둘렀다.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하자 시위대는 '살수 맞대응'을 했고 돌멩이와 곤봉도 날아다녔다.

경찰도 집회 초반부터 살수차를 동원해 조기해산에 나서는 등 한층 엄정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에 맞서 시위대도 강력하게 대응하자 양측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시종일관 험악했던 시위 현장

28일엔 본격 집회가 시작된 오후 7시 전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

오후 4시경 금속노조 조합원과 다음 아고라 누리꾼 800여 명이 종로구 옛 한국일보 사옥 앞 왕복 8차선을 점거하고 청와대로 진출하려 해 경찰과 충돌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 쪽에서는 오후 6시부터 폭력과 폭언이 난무했다. 시위대가 광장 앞에 주차된 경찰 살수차량 3대를 발견하고 흥분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경찰 살수차의 운전석 유리창을 깨고 운전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이어 차량 배전판의 전기선을 끊고 바퀴에 구멍을 낸 뒤 물을 모두 빼냈다.

1시간가량 집회를 마친 뒤 오후 8시 반경부터 가두행진을 시작한 시위대는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 쪽에서 경찰 차벽에 길이 막히자 계란과 돌멩이를 던지며 거세게 항의했다. 일부는 경찰버스에 밧줄을 걸어 당겼다.

이에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자 흥분한 시위대 역시 소방호스를 끌어와 물을 쏘며 맞섰다. 또 절단기를 동원해 경찰차량의 철창을 자르고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유리창을 깼다. 시위대는 깨진 유리창 너머로 깃대와 곤봉을 휘두르며 안에 타고 있던 전경을 무차별 공격했다.

오후 10시경 세종로 일대에서도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시위대는 망치와 쇠파이프, 쇠꼬챙이로 경찰버스를 부수고 경찰을 향해 살충제와 까나리 액젓 등을 뿌렸다.

이 과정에서 비폭력을 주장하던 참가자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이날 자정 여대생 이모(24) 씨가 경찰버스 안으로 모래를 뿌리던 시위대를 제지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시위대는 이 씨를 향해 "맨 앞줄에 세워 물대포를 맞게 해 주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1980년대 시위 주도세력 재등장

이번 주말 집회에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30, 40대의 386세대 100여 명은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이라고 적힌 깃발 아래 모여 "1980년대식 경찰의 연행과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손목에 빨간 손수건을 맨 이들은 살수차 탈취를 주도하면서 서울광장에서 안국동까지 운동가요를 부르며 행진했다.

전대협의 재등장으로 인터넷 공간에서는 1980년대 시위문화를 주도했던 운동권 세력들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고라 전국대학생연합회'(cafe.daum.net/agoraU)가 29일 개설돼 이날 하루 200여 명이 가입했다. 관련 게시판 등에는 "전대협이 살아났으니 사수대와 오월대도 나오라"는 글이 뜨고 있다.

실제로 일부 누리꾼들은 경찰의 진압에 맞서는 '사수대'를 조직하고 있다.

'국민의 부대 촛불 1004 중대(cafe.daum.net/candleco)'라는 카페가 29일 개설돼 경찰에 맞설 대원을 모집하고 있다. '비폭력 무저항 중대가 아니기 때문에 신변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이 카페에는 이날 하루 500여 명이 가입했다.

한 가입자는 "복장은 사수대의 전통성에서 찾아야 한다. 붉은색 모자와 붉은색 손수건(혹은 두건), 목장갑(혹은 가죽장갑), 테잎 혹은 붕대를 감은 쇠파이프 하나면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 엄정 대응 방침 고수

경찰도 이전과 달리 시위대에 대해 초반부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기조를 유지했다.

경찰이 시위대와 정면충돌하면서 29일 오전 1시경 여성 시위 참가자가 태평로 인근에서 전경들에 둘러싸여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또다시 과잉 진압 논란이 일었다.

집단구타를 당한 장모(25·회사원) 씨는 "프레스센터 근처에서 강제진압을 위해 쏟아져 나오는 경찰을 피하려다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날 틈도 없이 전경들이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장 씨는 현재 오른쪽 팔이 골절되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상태다.

이와 관련 경찰은 장씨 폭행에 가담한 전투경찰을 가려내기 위해 감찰조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시위대와 전투경찰들이 뒤엉켜 넘어진 상황이었는데 전경들도 부상을 입자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 같다"며 "정확한 상황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전대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으로 1980년대 전국적인 학생운동을 지휘했다. 1987년 7월 5일 전국의 대학총학생회장이 경찰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한열씨의 장례절차를 논의하던 중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가 전국적 대학생 조직 결성을 제안했다.

같은 해 8월 19일 충남대에서 95개 대학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시 서대협 의장이던 이인영(전 통합민주당 의원)씨를 의장으로 뽑아 1기 발족식을 열었다. '구국의 강철대오'라는 기치를 내건 전대협은 발족선언문에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조국의 평화통일, 민중연대 등을 활동목표로 내세웠다.

임수경 평양축전 참가(1989년), 8·15범민족대회 추진(1990년) 등으로 주요 간부가 구속, 수배됐다. 1993년 5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사실상 재출범했다.

김상운기자 sukim@donga.com

신광영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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