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수능 등급제 혼란 부르고 대학 탓만

  • 입력 2007년 12월 1일 03시 02분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5일 앞당겨 12월 7일 내놓겠다고 긴급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김 부총리가 7월 6일 내신 실질반영비율 파문에 대한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한 이후 146일 만의 브리핑이었다.

그는 이날 “수험생 및 학교 현장에서 수능 등급제를 처음 시행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수험생과 학부모에게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등급제로 인한 혼란의 1차적 책임은 교육부에 있는데도 김 부총리는 이를 ‘점수제에 집착하는 일부 대학’의 탓으로 돌리고 제재 운운했다.

등급제 혼란은 고작 1, 2점에 집착하는 고정관념 때문만은 아니다. 원점수 차가 수십 점씩 벌어져도 같은 등급으로 묶여 변별력이 없고, 총점이 크게 앞서도 등급은 역전되는 불합리 때문이다.

난이도 조정에 실패할 경우 특정 등급이 없어지는 ‘등급 공백’에 대한 우려도 일찍부터 제기됐지만 교육부는 총점식 사고를 버리라는 강변만 되풀이해 왔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리 ‘가’형이 쉽게 출제돼 1등급 구분점수가 100점일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두 문제를 틀려 2, 3등급으로 떨어지면 지원 가능한 대학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교육방송(EBS)에서 강의하는 한 교사는 “김 부총리가 수능 이후에 일선 고교나 학원가를 한 번이라도 찾아봤다면 그렇게 당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육부는 수능 성적 조기 발표설에 대해 발표 전날 밤까지도 부인하다 당일 아침에야 부랴부랴 통보했다. 그래서 수험생 불안 해소 외에 대통령 선거 일주일 전에 수능 문제로 시끄러우면 표심에 악영향을 줄까 봐 정치적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수능 등급제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학생부가 신뢰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선 대학별 고사로 실력을 평가할 수밖에 없어 사교육업체만 ‘논술 대목’을 톡톡히 보고 있다. 없는 사람을 위한 제도인 것처럼 홍보를 해 왔지만 서민이 손해를 보는 수능 등급제에 대해 교육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보완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김희균 교육생활부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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