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 훼손범 "역사 바로잡고 싶었다"

  • 입력 2007년 2월 27일 17시 44분


조선이 청나라에 패한 후 청 태조의 승전 내용을 새긴 삼전도비(사적 101호)를 훼손한 범인이 잡혔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생활정보 사이트를 운영하던 백모(39) 씨는 지난해 말 월간지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촉발한 조병갑 고부군수의 선정비가 경남 함양군 역사인물공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던 백 씨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해 1월 중순 해머를 들고 공원을 찾았다. 그는 조병갑의 청덕 선정비를 쓰러뜨리고 비석 뒤쪽 중간에 새겨진 문구의 일부를 훼손시켰다. 또 전체 32개의 비석 위에 지붕처럼 올려진 옥개석 12개도 바닥에 떨어뜨렸다.

백 씨는 내친 김에 평소 눈엣가시였던 삼전도비도 훼손하겠다고 결심했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나라에 패배한 뒤 청의 요구에 따라 1639년 세운 3.95m 높이의 석비(石碑)로 청 태종의 승전 내용이 새겨져 있다.

평소 "치욕의 상징인 삼전도비를 철거하거나 위정자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청와대로 이전한 후 모조품을 국회, 대법원, 국립중앙박물관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백 씨는 미리 범행 장소를 답사했고 이번에는 크기를 고려해 해머 대신 스프레이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백 씨는 3일 오후 9시 40분 경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 공원을 찾아 붉은색 스프레이를 이용해 비 몸체인 비신(碑身)의 앞뒷면에 '철', '거', '병자', '370(인조가 항복한 지 370년이 지났다는 의미)' 등의 글씨를 써 놓았다. 안내판에도 청녹색 스프레이를 이용해 'X'라고 낙서를 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언론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한편 경기도 파주의 인조 묘지 앞 사당을 훼손할 계획을 세우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7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백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백 씨는 경찰에서 "4~5년 전부터 삼전도비만 생각하면 기분이 답답할 정도로 무거웠다"면서 "잘못된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에게 자칫하면 몇 년 후 외세의 침략을 받아 굴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각성시키려 했다"고 진술했다.

장원재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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