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의 침착한 위기대응으로 선원등 9명 생존

  • 입력 2007년 2월 15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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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잡이를 나간 어선이 망망대해에서 화재로 침몰했지만 선장과 선원 등이 기지를 발휘해 모두 생명을 건졌다.

14일 새벽 0시10분경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남동쪽 33㎞ 해상에서 귀항 중이던 서귀포선적 연승어선 미성호(22t)가 불길에 휩싸였다.

선장과 선원 등 9명이 탄 미성호는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갈치 잡이를 하다 "기상이 악화된다"는 예보를 듣고 서둘러 서귀포항으로 돌아오다 기관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난 것.

불길은 순식간에 거세졌다.

고성호(45) 선장은 닻을 내리고 선실에서 잠자던 선원을 깨운 뒤 기관실 불을 잡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고 선장이 화재 진압을 포기하고 기관실을 나오자 선원들은 각자가 스티로폼 부표를 몸에 묶고 있었다. 고 선장은 즉시 선원들을 뱃머리로 모이게 하고 몸에 묶은 부표를 떼내도록 했다.

바다로 각자 뛰어들 경우 뿔뿔이 흩어져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

대신 직경 30~40㎝ 부표 30여 개를 배에 연결된 닻줄 끝에 매달도록 했다. 그리고는 불길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바다에서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것.

바다에는 4~5m의 높은 파도와 강풍이 몰아쳤다. 불길이 옷에 번지기 시작하자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미리 바다에 던진 부표를 잡고 구조되기를 기다렸다.

조류를 따라 흘러가는 어선은 불길에 휩싸였고 어창을 채웠던 최고급 갈치 2500㎏도 모두 가라앉았다.

망망대해에 남겨진 선장과 선원들은 추위, 파도를 견디며 사투를 벌였다. 높은 파도가 칠 때마다 선원들이 부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고 선장은 "무선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몰라 쉽게 구조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라고 했지만 1시간가량 지나자 마비증세가 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1시간30분쯤 지났을 때 멀리서 어선 서치라이트가 비쳤다. 다급한 무선을 들은 서귀포선적 남진호(27t·선장 강충남)가 구조에 나선 것.

멀리서 섬광등을 보고 찾아왔다. 이 섬광등은 그물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부표에 부착하는 것으로 한 선원이 기지를 발휘해 바다로 뛰어들 때 챙겼다.

선원 김병주(42) 씨는 "죽을 경우 시체라도 찾으라고 섬광등을 갖고 나왔다"며 "선장이 위기 순간에 침착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 선장은 부표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선원들을 먼저 남진호에 올라가도록 한 뒤 마지막으로 구조됐다.

선원 가운데 5명은 서귀포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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