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호남-영남 ‘대선 민심’ 3色

  • 입력 200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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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대통령선거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각 지역 민심은 벌써부터 출렁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내 개헌 제안,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열린우리당의 분당 조짐,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치열한 예비 경선전 등 굵직굵직한 대선 이슈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보는 지난달 30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KRC)에 의뢰해 충청과 영남 호남 지역에서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정치 현안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세 지역의 민생 현장을 직접 찾아가 민심의 저류를 추적해 봤다.》

▼충청▼

충청의 민심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쏠림 현상’이 적은 편이다.

이 지역의 대선주자 선호도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40.7%로 1위였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25.5%), 손학규 전 경기지사(5.3%) 순이었다. 이 전 시장에 대한 선호도는 전국 평균보다 5.7%포인트 낮다. 반면 박 전 대표는 5.5%포인트 높아 양자의 격차(15.2%포인트)가 전국 평균(26.4%포인트)보다 10%포인트 이상 작았다. 강원 제주지역(3.7%포인트)을 제외하고는 두 후보 사이의 격차가 가장 작은 지역이다.

‘선호후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은 57.7%로 전국 평균보다 5.5%포인트 높은 반면 ‘바꿀 가능성이 없다’는 답변은 35.3%로 전국 평균보다 6.2%포인트 낮았다. 그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가변성도 커 보인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이 지역 유권자들은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만나본 사람들 중에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충남의 경제단체장을 맡고 있는 한 기업인은 “흔히 이번 대선을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싸움으로 보지만 둘 다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며 “그래도 새로운 누군가가 없으면 둘 중 하나를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육거리시장 상인 김모(47) 씨도 “(지금 거론되는) 대선주자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1일 오후 대전 대덕구 영보교통 운전사 대기실. 택시에 액화석유가스(LPG)를 충전하기 위해 회사에 잠시 들른 운전사 10여 명이 대통령선거를 화제로 즉석 토론을 벌였다.

“이 전 시장이 나오면 무조건 된다” “박 전 대표도 만만치 않다” “손 전 지사도 인기는 좋은데, 같은 당에 거물이 있으니까 밀린다” 등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조모(45) 씨가 “이렇게 살기 어려운데, 이번에 열린우리당은 당연히 안 된다”고 하자 최모(43) 씨는 “한나라당이 되면 경제가 좋아지느냐”고 받아쳤다.

지난달 31일 저녁 ‘대덕특구 여성벤처회’(회장 박경숙 ㈜모두텍 대표) 회원들이 모인 대전 유성구 S 음식점에서는 대선주자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쏟아졌다.

한 회원이 “이 전 시장은 실행능력이 있고 결과물이 있다”고 하자 다른 회원이 “말을 좀 더 조심스럽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강하고 우아하다” “리더십이 약한 것 같고 아버지 후광이다”라는 견해가 엇갈렸다. 손 전 지사에 대해서는 “깨끗하긴 한 것 같은데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충남대 정용길 경영학부 교수는 “여당의 실정에 따라 한나라당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지만 20대 젊은 층이 언제 어떻게 대선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충청권의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청주=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호남▼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뚜렷한 여권 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호남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도가 32.3%를 기록한 가운데 그 뒤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12.4%)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8.1%),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7.2%)가 잇고 있다.

고 전 총리가 낙마한 이후 그에 대한 지지가 여당 주자들에게 쏠린 것이 아니라 이 전 시장, 정 전 의장, 손 전 지사, 박 전 대표 등에게 고루 분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시장은 본보 신년여론조사(지난해 12월 27∼28일 실시)에서 23.7%의 지지를 얻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9%포인트 가까이 올랐고 정 전 의장과 손 전 지사도 각각 6%포인트 남짓 지지도가 올랐다.

전북 출신인 정 전 의장은 12.4%의 지지도로 범여권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여권의 선두 주자인 것은 틀림없으나 ‘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가장 나은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 호남의 24.4%만 정 전 의장을 꼽아 아직 ‘지지의 강도’는 높지 않은 듯하다.

이 전 시장, 손 전 지사, 박 전 대표 등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를 모두 합하면 47.6%다. 정당 지지율도 한나라당이 13.3%로 ‘두 자릿수’ 지지를 얻었다. 20대 이하는 20.2%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호남에서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후보들에 대해 이처럼 높은 지지가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도가 대선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호남권에서는 아직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대답도 24.6%로 전국 평균 16.6%보다 높다. 특히 전남의 경우는 그 비율이 30.0%에 달했다.

또 현재 선호하는 대선 주자를 바꿀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57.3%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답해 여권 후보가 정해지면 지지도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광주 충장로에서 돈가스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모(49) 씨는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채로 나올 여당 후보보다는 경제를 잘 아는 이명박 씨가 훨씬 낫다”며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면 정말 선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김모 씨는 “광주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며 “지역주의가 사라지고 후보의 능력을 보고 판단하는 눈이 생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남대 사학과 김병인 교수는 “호남 사람들이 겉으로는 이명박 씨를 지지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새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며 “현재의 여권 후보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지만 누가 이들을 대체하느냐에 따라서는 폭발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주 우진문화재단의 한 직원은 “정 전 의장이 여권 후보로 결정되면 지지할 것”이라면서도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광주·전주=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영남▼

영남도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48.9%로 선두를 달리고, 27.4%인 박근혜 전 대표가 뒤를 쫓는 형국이기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산 울산 경남(PK)과 대구 경북(TK)의 추세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이 전 시장은 PK에서 49.2%의 지지율을 보였다. 박 전 대표는 24.3%였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2.0%였다.

TK에서는 이 전 시장 48.3%, 박 전 대표 32.1%다. 박 전 대표는 PK에 비해 8%포인트가량 지지율이 높았다.

정당 지지율과 이념 성향에 대한 조사 결과도 두 지역이 차이를 보였다.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TK는 72.0%로 전국 최고였다. 이념 성향 조사에서도 TK에선 보수가 40.0%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이어 중도 26.4%, 진보 22.0%로 나타났다.

반면 PK에선 한나라당 지지도가 58.6%로 TK에 비해 낮았다. 또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중도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35.8%였고, 이어 보수 29.3%, 진보 26.0%의 순이었다.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한 민심도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가 확실히 높기는 하나,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가 고착화한 상황은 아닌 듯하다. ‘누가 후보가 되든 현 여권을 이기면 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30년째 생선을 팔고 있다는 이모(63·여) 씨는 2일 “맹박(이 전 시장을 지칭)이 그 사람 갱제(경제)를 잘 안다며. 정치도 잘하겠제(하겠지)”라고 했다. 몇 사람이 동조했지만 김모(70·여) 씨는 “갱제도 갱제지만 나라살림(안보)도 걱정되니 근혜가 훨씬 낫∼제”라고 맞섰다.

그러나 이들의 결론은 “두 사람이 갈라서지 않고, 이번에는 마음을 맞춰 제발 누가 되든지 돼야 할 건데…”라는 것으로 모아졌다.

부산의 공무원 김모(46) 씨는 “자칫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꼴’이 될 수 있다”며 “한나라당도 정부정책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생산적인 협력과 상생하는 모습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경성대 공보경(정치외교학) 교수는 “아직까지 대선에 대한 구체적인 이슈가 없어 부산에서는 한나라당의 두 후보(이명박, 박근혜)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결국 민심도 경제나 민생에 어필할 수 있는 인물 중심으로 흐르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대구는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모두 TK 출신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대구시의 한 사무관은 “그래도 한나라당이 지지율도 높은 데다 그 당의 유력 후보들이 지역 출신이어서 누가 당선되든 지금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남대 백승대(사회학) 교수는 “무조건 한나라당 후보가 돼야 한다는 것보다는 실용적 관점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후보를 찾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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