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결혼 했다 정든 한중 부부 실형

  • 입력 2007년 1월 25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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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위장결혼으로 만났지만 정이 들어 진짜 부부로 살아가려던 한국 남성과 중국 여성이 법의 냉혹한 현실에 부딪혀 생이별을 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며 혼자서 초등생 딸 둘을 키우던 이혼남 L(43) 씨는 지난해 봄 국제결혼 브로커로부터 "중국 여성과 위장결혼을 해 주면 300만 원을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돈이 아쉬웠던 L 씨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브로커의 안내로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건너가 한국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한족 여성 F(31) 씨를 처음 만나게 됐다.

중국에서 F 씨와 결혼을 약속한 뒤 한국에 돌아온 L 씨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다는 생각에 한때 마음이 흔들려 결혼을 취소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하지만 '결혼을 취소하려면 중국에 오간 경비를 모두 물어내라'는 브로커의 말에 L 씨는 뜻을 접고 지난해 6월 서울 도봉구청 호적계에 찾아가 혼인신고를 했다.

지난해 8월 입국한 F 씨는 인천공항 근처 식당에 취직해 숙식을 해결했고 쉬는 날이면 L 씨 집에 찾아와 지내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비록 매일같이 보는 사이가 아니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두 딸과 잘 놀아주고 같이 사는 자신의 부모에게도 예의 바르게 대하는 F 씨에게 L 씨는 점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L 씨와 F 씨는 서로에 대한 감정의 징표로 금반지를 나눠 끼고 딸들과 같이 놀이동산에 찾아가기도 하는 등 점차 '정상적인' 부부 관계로 발전해 갔다.

하지만 행복한 날은 잠시뿐 F 씨가 입국한지 2개월만에 단속반이 L 씨 집에 들이닥치며 생이별이 시작됐다.

이들은 불법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간주돼 기소됐고 F 씨는 주거가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 10단독 김용대 부장판사는 실제 결혼할 의사가 없으면서 혼인신고를 한 혐의(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 등)로 기소된 L 씨와 F 씨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설령 피고인들이 (거짓 혼인신고 뒤) 혼인의 실체에 부합하는 부부생활을 계속해 민사상으로는 혼인이 유효하게 되더라도 형사상 이미 성립한 범죄(거짓 혼인신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F씨는 재판 직후 구치소에서 외국인 보호소로 신병이 넘겨진 뒤 23일 중국으로 강제 출국됐다.

다시 홀몸이 된 L 씨는 "답답한 심정일 뿐이다. 딸들과 함께 면회갔을 때 F가 펑펑 눈물을 흘리는 게 지금도 기억난다"며 "가능하기만 하면 앞으로 정식 절차를 밟아 F는 물론이고 F의 아들까지 데리고 와서 한 식구로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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