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면 그땐 행복하게…

  • 입력 2006년 10월 5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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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박은옥 부부(동아일보 자료사진)
정태춘-박은옥 부부(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 3일 오전 맞벌이 하는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집에서 불이 나 남매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 온모(40)씨 집에 3일 오전 7시 10분쯤 불이 나 딸(9.초등2)과 아들(6)이 불과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당일 새벽 3시께 출근한 택시기사인 아버지 온씨는 '아빠, 집에 불났어'라는 딸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돌아왔으나 목조 건물인 집은 이미 화염으로 뒤덮힌 상태였다.

어머니 김모(35)씨도 이날 오전 7시께 파지를 고물상에 팔기 위해 외출했다가 사고 소식을 접하고 집으로 왔으나 불길에 휩싸인 두 남매를 속절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경찰 조사결과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염려한 김씨가 외출하면서 집문을 잠그는 바람에 두 남매가 불이 난 집 안방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온씨는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해 얼마전부터 택시운전을 시작했으며 생계가 어려워지자 부인도 파지를 주워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온씨는 "딸 아이가 동생을 데리고 어떻게든 문을 열고 빠져 나왔으리라고 생각했는데"라며 "'살려달라'는 딸의 울부짖음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평소 아들이 라이터를 이용해 촛불을 켜는 장난을 자주했다는 온씨와 주변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 중이다.

남매의 안타까운 죽음은 연합뉴스를 통해 알려졌으나 추석 연휴 직전 터져나온 북한 핵실험 강행 선언 등 수많은 기사에 파 묻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두 남매의 비극과 꼭 같은 슬픈 이야기는 사실 10여년 전 가수 정태춘씨의 노래를 통해 알려진 적이 있었으며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곤 했습니다. 2004년에는 비슷한 사연으로 3남매가 함께 불에 타 숨진 사건이 있었으며 당시 도깨비뉴스가 정씨의 노래와 함께 3남매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도깨비 뉴스는 "정씨의 노래가 당시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노래지만 3남매의 죽음을 계기로 네티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이 노래는 1990년 두 어린이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두 어린이는 아버지 어머니가 아침 일찍 일을 나간 뒤 하루 종일 방에서 놀며 성냥불 불장난을 하다 방에 불이 나 숨져 갔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신들이 없는 사이 아이들이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방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항상 방문을 잠그고 다녔다. 아니 아이들이 너무 어려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불이 났을 때 방문이 잠겨 있어 아이들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어 갔다.

가수 정태춘씨가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사건 당시 한 신문 기사를 정씨가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해 아이들이 독백을 하듯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이 엄마 아빠께 하직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1990년에 발표한 앨범 ‘아, 대한민국’에 수록되어 있는‘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다. 이 음반은 검열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불법음반'이었지만 90년대 초반 한 때 입에서 입으로, '불법복제' 테이프를 통해 널리 알려졌던 노래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죽음 -정태춘-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였을 때, 다섯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붙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 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훨~ 훨~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훨 ~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퉁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리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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