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한 포항…건설노조 노사합의안 부결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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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건설노조의 노사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77일째를 맞은 파업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경북 포항시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죽도시장 상인들은 이날 파업이 종결될 것으로 믿고 환영 현수막까지 준비했다가 걷어 들였다.

13일 포항 근로자복지회관에서 전체 조합원 3000∼3500명 가운데 2056명이 참가해 실시된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에서 반대가 1325표(64.5%) 나왔다. 찬성은 714표(33.7%), 무효는 17표였다.

공사장에 복귀한 500여 명과 상당수 노조원들은 일자리를 찾아 포항을 떠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노조집행부의 호소를 받아들인 노조원들=투표에 앞서 노조 집행부는 “일용직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서 집행부를 한 번 더 믿어 달라”며 노조원의 결집을 호소했다.

노조 집행부는 공사 현장으로 복귀하는 노조원이 늘어나고 일부 노조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조 출범이 예상되면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현 집행부를 비판하며 새 노조를 준비하는 노조원들은 이날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표를 던졌다는 한 노조원은 “파업이 너무 길어져 가정형편도 말이 아니어서 그만 종결했으면 했지만 집행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찬성표를 던진 노조원 중에는 투표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들은 “진정으로 조합원의 뜻을 묻기 위해서는 집행부 이야기와 함께 파업 종결에 관한 발언도 공개적으로 제기해 조합원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했다”고 말했다.

▽허탈해하는 포항=가결을 확신했던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은 “가결을 예상하고 공사 준비를 해왔는데 이제 회사 문을 닫는 일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건설협의회의 한 간부는 “노조 측은 언제든지 협상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보이고 있지만 업체들은 현재로선 더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며 “대책을 찾아보겠지만 공사를 포기하는 업체가 늘어나면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청업체인 포스코건설은 상당수 업체들이 공사를 포기할 것에 대비해 공사업체 변경과 합법적인 대체 인력 확보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포스코건설 사업지원팀 관계자는 “가결을 예상했지만 차선책으로 부결에 따른 대책 마련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며 “업체를 변경하고 합법적인 대체 인력을 총동원해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업 타결을 기대했던 포항시민들은 크게 실망하고 있다. 이제 더는 기대할 게 없다는 자포자기의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죽도어시장번영회 박세영(56) 회장은 “노사 서로 입장이 있겠지만 상인들 처지에선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지역 경기가 좋지 않다고 야단인데 이제 그만 파업을 끝내고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게 포항시민의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애향단체인 포항뿌리회 이성환(65) 회장은 “추석을 앞두고 오늘은 꼭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와 허탈하기 짝이 없다”며 “더는 기대할 게 없다며 내버려두자는 이야기를 하는 시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파업 참여 발전노조원 2009명 전원 징계할듯▼

4일 15시간 파업을 벌인 한국발전산업노조에 대해 대규모 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 산하 5개 발전(發電)회사는 13일 “이번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 2009명 전원에 대해 조사를 벌여 각사 규칙에 따라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며 “15일부터 각 회사 감사팀에서 개별 노조원에 대한 징계수위를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각 회사는 파업 가담 정도와 불법행위 여부, 복귀시점 등을 기준으로 경고, 견책, 감봉(1, 3, 6개월), 정직(1∼6개월)은 물론 해고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파업에 앞서 7월 12일 발전노조 임시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작업장을 무단이탈한 1177명에 대해서도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이번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에 대해선 가중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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