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통영시 낙도 어린이들의 거리응원전

  • 입력 2006년 6월 14일 15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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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도 재밌지만 길거리 응원전이 더 신나요"

한국과 토고의 축구 경기가 열린 13일 저녁. 길거리 응원전이 펼쳐진 서울 청계광장에 뿔 달린 모자와 태극 망토를 두른 '꼬마 붉은 악마' 8명이 등장했다.

이들은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앞줄에 자리 잡고 응원전 영상이 흘러나오는 대형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피커에서 응원가가 쿵쿵 울리자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면서 까르르 웃기도 했다.

난생 처음 길거리 응원에 나선 이들은 경남 통영시에서 뱃길로 한 시간 떨어진 낙도 3곳에서 온 초등학생. 전교생이 2명에 불과한 수우도분교와 두남분교, 전교생이 4명인 연화분교 학생들이다.

서울 구경이 소원이었던 섬 아이들은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이날 꿈을 이뤘다. (주)한국야쿠르트의 '사랑의 손길 펴기회'가 주관하고 '한국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재단'과 본보가 함께 하는 '꿈은 이루어진다' 행사가 이 아이들을 초청한 것.

사흘 일정으로 12일 섬을 출발한 아이들은 배를 1시간 타고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지만 고된 줄도 모르고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이들은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둘러봤다. 막내 장현준(8ㆍ두남분교 1학년) 군은 "물고기는 매일 봤지만 상어는 처음 봤다"며 "서울은 상어도, 자동차도 다 크다"고 말했다.

점심으로 피자를 먹은 아이들은 "섬에서는 피자를 주문해 먹을 수 없다"면서 "심심하면 놀래미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피자랑 햄버거도 먹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남산과 청계천을 둘러본 아이들은 "이게 말로만 듣던 강이냐"면서 청계천을 걸어가려면 며칠이 걸릴까에 대해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섬에서만 살던 아이들에게 서울 구경의 하이라이트는 길거리 응원전이었다.

주민이 30명뿐인 두남도에 사는 박설경(11ㆍ두남분교 4학년) 양은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축구선수가 꿈인 김동욱(11ㆍ연화분교 4학년) 군은 후반 연속 두 골이 터지자 "우리의 응원을 듣고 이겼다"면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부모가 대부분 영세어민이거나 없기 때문에 이들은 집에서 혼자 지낼 때가 많다. 부모님이 한번 고기를 잡으러 가면 2, 3일 동안 바다에서 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도 전교생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니 축구를 하기도 힘들다. 텅 빈 집에서 TV로 축구 경기를 보면 잡을 수 없는 꿈을 본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수많은 사람이 함께 열광한 이날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됐다. 밤하늘을 가르는 승리의 축포를 보면서 아이들은 소원을 이뤘다며 해맑게 웃었다.

김희균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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