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재봉]아이들 볼까 두려운 ‘전교조 동영상’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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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부산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지만 일각에서는 APEC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산지부는 최근 17분 30여 초짜리 동영상과 35쪽 분량의 ‘APEC 바로 알기 수업안’이라는 자료를 통해 APEC의 부정적인 면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민주사회는 다양한 의견의 표출을 허용하고 있으며 교사가 교과과정에 없는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가르친다는 ‘계기수업’의 취지는 옳다. 하지만 이때 교사는 사안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신중하고 균형 있게 지도해야 한다. 그런데 동영상에는 비속어가 곳곳에서 난무해 학생들이 볼까 두려울 지경이다. 한국과 외국의 국가원수들을 모독하는 비교육적 행태도 보여 주고 있다. ‘수업안’의 경우 APEC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만 할애하고 대부분이 부정적인 내용이다. ‘APEC는 전쟁을 옹호하고 합리화한다’는 식의 편향된 시각도 자주 등장한다.

APEC가 시장개방에 앞장서 온 것처럼 기술한 부분도 적절치 않다. APEC는 무역자유화보다 거래비용의 절감을 통한 ‘무역 환경의 개선’에 주력해 왔다. 만장일치제의 의사결정과정으로 어떤 회원국도 자유화를 강요받지 않는다. 또 무역자유화가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한다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통계는 교역으로 오히려 빈곤 및 불평등이 개선됐음을 보여 준다.

APEC가 부산에 주는 긍정적 효과가 과대 포장되었다는 주장도 허구다.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정상들과 더불어 각료, 기업인, 언론인 등 5000명 이상의 외국인이 방문한다. 21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라서 세계의 언론이 앞 다투어 취재경쟁을 벌인다. 부산은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절호의 기회를 맞는 셈이다.

APEC는 개발도상국의 인적 자원 개발을 지원하고 사회안전망의 형성을 돕는 한편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한다. APEC의 이러한 중점 사업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사회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 길이다.

수업안 중 부적절한 사례는 ‘인간 안보’를 설명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APEC의 인간 안보를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테러전쟁’ 정도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편협한 시각이다. 인간 안보의 의제에는 테러에 대한 대책과 더불어 자연재해에 대한 예방 및 재난 시의 국제 공조 방안,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및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같은 치명적 전염병의 예방 등 개인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중요 의제가 다수 포함돼 있다. 사실에 대한 확인이나 이해 없이 학생을 가르치려는 것은 테러만큼 위험하다.

모든 약에 부작용이 있는 것처럼 세계화에도 구조조정이라는 부담이 따른다. 부작용을 두려워하여 약을 제때 쓰지 않는다면 병은 깊어진다. 우리나라는 교역으로 살아가는 나라이며, 총교역의 70%와 외국인 투자액의 3분의 2 정도는 APEC 20개 회원국이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APEC를 반(反)세계화 시위의 계기로 삼기보다 국가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는 사회적 합의 위에 결정되어야 한다. 학교교육이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전교조의 동영상과 수업안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전교조는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잘못된 지식과 시각을 전달하는 어리석음을 더는 범하지 않기 바란다.

노재봉 APEC교육재단 사무총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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