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검사들은 검사들의 신망을 받으면서 조직 장악력이 있는 정 차장이 내정된 것에 안도하면서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가깝다고 하니 우려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 동요 진정될 듯…그러나 개혁은 박차=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이에 반발한 김종빈(金鍾彬) 전 검찰총장의 사퇴 등으로 어수선해진 검찰 조직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 차장은 친화력과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고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검찰 조직을 추스르기에 적임자라는 점에 이견이 별로 없다.
‘검찰의 2인자’인 대검 차장으로서 현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옛 국가안전기획부 도청 테이프 수사 등 중요 사건 수사에 공백이 생길 가능성도 거의 없다. 도청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따로 보고할 사안이 없는 것이 가장 반갑다”고 말했다.
또 한창 진행 중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형사소송법 개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도 이전보다 훨씬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사개추위의 한 관계자는 “정 내정자는 생각이 유연해서 대화가 잘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영향’을 얼마나 잘 막아낼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한 검찰간부는 “노 대통령과의 친분은 장점이면서 또한 숙명적인 약점”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 간부는 “검찰의 원칙과 청와대 등 여권의 정치적 이해가 다른 사안에 대해 정 내정자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이 이전보다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한 검사는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 사건을 겪으면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청와대나 법무부가 정 내정자를 통해 개혁을 실현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 내정자도 이 같은 요청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검사들은 “정 내정자가 ‘정치력’이 뛰어난 만큼 큰 불협화음 없이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택하지 않겠느냐”고 낙관론을 나타냈다.
한편 정 내정자에 대해 “수사 지휘권 발동 때 대검 차장으로 김 전 총장을 보필했다는 점에서 책임론을 떨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노심(盧心)과 검심(檢心) 모두 잘 이해”=정 차장이 내정된 일차적인 배경은 정 차장이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로 노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 차장의 총장 내정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으로 정 차장이 검사들에게서 신망이 높고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점도 발탁 배경으로 꼽힌다. 청와대와 여권으로서는 ‘검란(檢亂)’의 우려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안도와 우려 교차=검사들은 일단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어려운 시기에 검찰 조직을 위해 활로를 열어줄 지모와 책략을 갖춘 분이어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한 중견검사는 “검찰과 청와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카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의 한 중견검사는 “노 대통령이나 정치권과 가깝다고 하니까 우려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재경지검 한 검사는 “도청 수사와 X파일 수사 등 진행 중인 굵직한 현안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검사들은 이런 사건들에 대해 결정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河昌佑) 공보이사는 “검찰 독립에 대한 소신과 검찰 장악력을 동시에 갖춘 분”이라며 “이번 수사지휘권 갈등을 봉합하고 검찰 조직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인사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 이헌(李憲) 총무간사는 “현 정권에서는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이거나 성향 또는 고향이 같아야 인사 대상이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상명 총장내정자는▼
정상명 검찰총장 내정자는 노무현 대통령과는 사법연수원 시절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했다. 노 대통령과 함께 사법연수원 동기생 친목모임인 ‘8인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TK(경북 의성군) 출신으로 대검 공안3과장과 법무부 법무심의관, 서울지검 2차장 등 일반 형사와 특별수사, 공안, 기획을 두루 거쳤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와 경북고 동기생인 데다 고향도 같아 절친한 사이다. 사법시험은 강 원내대표(12회)가 정 내정자(17회)보다 빠르다.
허준영(許准榮) 경찰청장도 정 내정자의 고교 후배로 가까운 사이여서 검찰과 경찰 갈등의 원인이 되어 온 수사권 조정 문제를 선후배가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1997년 서울지검 형사2부장 때 부도 액수가 5000만 원 이상인 경우 구속하던 관례를 깨고 20억5000여만 원의 부도를 낸 중소 방직업체 사장에 대해 ‘회생 가능성’을 판단해 불구속 기소했다.
1998년 서울지검 2차장 때 성 체험 고백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펴낸 탤런트 서갑숙 씨에 대해 기존의 성 가치에 혼란을 줄 정도가 아니라며 내사 중단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주관이 뚜렷하고 결단력이 강하지만 결과 도출 과정에서 후배 검사들과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업무에 관해서는 완벽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석에서는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는 등 소탈하고 화통해 후배들로부터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듣는다. 인하대 의대 교수인 오민화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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