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명 대검차장 내정]盧心-檢心 동시에 겨냥한 절충카드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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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정상명 대검찰청 차장(왼쪽)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차관으로 강금실 당시 장관과 호흡을 맞췄다. 14일 정 차장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거취를 고민하던 김종빈 전 총장(가운데)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려고 대검 청사 구내식당으로 걸어가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정상명 대검찰청 차장(왼쪽)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차관으로 강금실 당시 장관과 호흡을 맞췄다. 14일 정 차장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거취를 고민하던 김종빈 전 총장(가운데)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려고 대검 청사 구내식당으로 걸어가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상명(鄭相明) 대검찰청 차장이 후임 검찰총장에 내정된 것은 청와대가 검찰 개혁과 검찰조직 안정의 필요성을 함께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일선 검사들은 검사들의 신망을 받으면서 조직 장악력이 있는 정 차장이 내정된 것에 안도하면서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가깝다고 하니 우려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 동요 진정될 듯…그러나 개혁은 박차=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이에 반발한 김종빈(金鍾彬) 전 검찰총장의 사퇴 등으로 어수선해진 검찰 조직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 차장은 친화력과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고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검찰 조직을 추스르기에 적임자라는 점에 이견이 별로 없다.

‘검찰의 2인자’인 대검 차장으로서 현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옛 국가안전기획부 도청 테이프 수사 등 중요 사건 수사에 공백이 생길 가능성도 거의 없다. 도청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따로 보고할 사안이 없는 것이 가장 반갑다”고 말했다.

또 한창 진행 중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형사소송법 개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도 이전보다 훨씬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사개추위의 한 관계자는 “정 내정자는 생각이 유연해서 대화가 잘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영향’을 얼마나 잘 막아낼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한 검찰간부는 “노 대통령과의 친분은 장점이면서 또한 숙명적인 약점”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 간부는 “검찰의 원칙과 청와대 등 여권의 정치적 이해가 다른 사안에 대해 정 내정자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이 이전보다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한 검사는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 사건을 겪으면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청와대나 법무부가 정 내정자를 통해 개혁을 실현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 내정자도 이 같은 요청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검사들은 “정 내정자가 ‘정치력’이 뛰어난 만큼 큰 불협화음 없이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택하지 않겠느냐”고 낙관론을 나타냈다.

한편 정 내정자에 대해 “수사 지휘권 발동 때 대검 차장으로 김 전 총장을 보필했다는 점에서 책임론을 떨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노심(盧心)과 검심(檢心) 모두 잘 이해”=정 차장이 내정된 일차적인 배경은 정 차장이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로 노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 차장의 총장 내정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으로 정 차장이 검사들에게서 신망이 높고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점도 발탁 배경으로 꼽힌다. 청와대와 여권으로서는 ‘검란(檢亂)’의 우려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안도와 우려 교차=검사들은 일단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어려운 시기에 검찰 조직을 위해 활로를 열어줄 지모와 책략을 갖춘 분이어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한 중견검사는 “검찰과 청와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카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의 한 중견검사는 “노 대통령이나 정치권과 가깝다고 하니까 우려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재경지검 한 검사는 “도청 수사와 X파일 수사 등 진행 중인 굵직한 현안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검사들은 이런 사건들에 대해 결정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河昌佑) 공보이사는 “검찰 독립에 대한 소신과 검찰 장악력을 동시에 갖춘 분”이라며 “이번 수사지휘권 갈등을 봉합하고 검찰 조직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인사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 이헌(李憲) 총무간사는 “현 정권에서는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이거나 성향 또는 고향이 같아야 인사 대상이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상명 총장내정자는▼

정상명 검찰총장 내정자는 노무현 대통령과는 사법연수원 시절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했다. 노 대통령과 함께 사법연수원 동기생 친목모임인 ‘8인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TK(경북 의성군) 출신으로 대검 공안3과장과 법무부 법무심의관, 서울지검 2차장 등 일반 형사와 특별수사, 공안, 기획을 두루 거쳤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와 경북고 동기생인 데다 고향도 같아 절친한 사이다. 사법시험은 강 원내대표(12회)가 정 내정자(17회)보다 빠르다.

허준영(許准榮) 경찰청장도 정 내정자의 고교 후배로 가까운 사이여서 검찰과 경찰 갈등의 원인이 되어 온 수사권 조정 문제를 선후배가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1997년 서울지검 형사2부장 때 부도 액수가 5000만 원 이상인 경우 구속하던 관례를 깨고 20억5000여만 원의 부도를 낸 중소 방직업체 사장에 대해 ‘회생 가능성’을 판단해 불구속 기소했다.

1998년 서울지검 2차장 때 성 체험 고백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펴낸 탤런트 서갑숙 씨에 대해 기존의 성 가치에 혼란을 줄 정도가 아니라며 내사 중단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주관이 뚜렷하고 결단력이 강하지만 결과 도출 과정에서 후배 검사들과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업무에 관해서는 완벽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석에서는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는 등 소탈하고 화통해 후배들로부터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듣는다. 인하대 의대 교수인 오민화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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