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죽음’ 푸대접에 운다…의사상자 기준 모호

  • 입력 2005년 9월 1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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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 1일 강원 횡성군의 한 계곡에서 열린 성경학교에 참가한 고교생 A 군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친구 B 군을 구하려다 함께 익사했다.

A 군 부모는 A 군을 의사자(義死者)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의사·의상자(義傷者) 심사위원회는 A 군을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B 군을 적극적으로 구하려 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

A 군 부모는 행정소송을 내 승소했다. 숨진 지 3년이 지나서야 A 군은 의사자로 인정됐다.

의사상자 제도가 애매한 선정 기준과 미흡한 보상으로 당사자와 유가족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의사상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 재판을 거쳐 뒤늦게 의사상자로 인정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애매한 선정 기준=1971년부터 현재까지 복지부가 의사자로 인정한 사람은 모두 285명. 의상자까지 포함하면 403명이 정부의 보상을 받았다.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의사자를 ‘자신의 직무가 아님에도 타인의 생명이나 재산을 구제하다가 사망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상자는 이 같은 일을 하다가 다친 사람이다.

그러나 직무의 범위, 타인의 범위, 구제의 정도 등은 규정되어 있지 않아 유사한 사안이라도 심사위원의 판단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철로에서 어린이를 구하다 두 다리를 잃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金幸均) 씨의 행위가 직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인지, 남극 세종기지에서 동료 대원을 구하기 위해 출항했다가 보트가 전복돼 숨진 전재규(全在圭) 대원의 경우 동료를 타인으로 볼 수 있는지 법률상으론 명확하지 않다.

김 씨는 의상자, 전 대원은 의사자로 인정됐지만 2002∼2004년 의사상자 신청자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직무상 일이며 구제대상이 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사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기간 신청자 142명의 절반인 71명만 의사상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같은 기간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21건 가운데 복지부가 승소한 건수는 단 1건에 불과했다. 복지부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8건도 하급심에서 대부분 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사상자 심사위원은 “심사용 자료가 신청자의 의사상 당시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흡한 보상=의사상자 관련 법규는 지속적으로 보완돼 의사자의 경우 1990년까지 500만∼600만 원에 불과했던 보상금이 올해 1억7000여만 원으로 대폭 늘었다. 정부는 또 지난해 9월 의사자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국립묘지 운영 개선안을 마련했다.

의사상자에 대한 예우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선됐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의사자의 유가족에겐 교육비가 지원되는데 지원 기간은 고교 재학 때까지다.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대학 재학 때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또 관련법은 의상자 본인이나 의사상자 가족이 취업 알선을 요청하면 시군구가 직장을 구해 주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취업 알선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심사위원은 “국가유공자의 자녀처럼 정부가 대학 때까지 교육비를 보조해 주고 취업 시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2~2005년 의사(義死) 의상자(義傷者) 지정 관련 행정소송 현황
구분소송 제기원고 승소원고 패소소송 중소송 취하
2002년33
2003년7511
2004년8242
2005년 8월 말 현재33
합계2110182
(단위:건) 자료:보건복지부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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