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私교육은 줄지 않는다

  • 입력 2005년 5월 13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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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만든 새 입시제도가 시행 초반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다. ‘내신 위주 입시’를 요구해 온 교육 당국은 내신 반영 비율을 급격히 늘리지 않겠다는 대학의 방침을 받아들였다.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을 존중했다기보다는 새 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부작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걸음 물러난 것이다.

우리 입시제도의 변천사는 실패의 연속이다. 입시제도를 바꿔 교육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고교는 여전히 무기력하고 대학은 침체에 빠져 있다. 입시제도가 빈번하게 바뀌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겐 혼란과 고통이 가중됐다. ‘우리가 실험용 쥐인가’라는 그들의 외침은 공감을 얻는다.

역대 정권이 입시제도에 어김없이 손을 댄 것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입시제도가 달라지면 뭔가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고 권력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젠 그런 ‘착시현상’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이번 ‘고1의 반란’처럼 어설픈 교육정책은 정권에 큰 부담을 안길 것이다.

▼정부는 입시에서 손 뗄때▼

그동안 정부의 ‘입시 개입’을 정당화해 준 명분은 사(私)교육의 폐해였다. 대학이 학생선발권을 갖는 것이 옳지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므로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입시 개입’을 용인해 온 것이다.

그러나 2008학년도 새 입시제도는 고정관념을 또 한번 허물어 버린다. 새 입시의 핵심인 내신등급제가 사교육을 줄이기는커녕 확대하는 결과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에 도입됐던 모든 입시제도가 그랬다. 사교육을 줄인다며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사교육의 몸집은 커지기만 했다.

이쯤해서 우리는 새 입시제도가 사교육을 줄여 줄 거라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 사교육이 원래부터 줄지 않는 것이라면 정부가 입시에 개입할 명분도 사라진다. 병을 고치는 방법 중에는 체질을 강화하는 일이 으뜸이듯이 정부는 입시에서 손을 떼고 공교육이나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 즉 교육의 체력을 튼튼히 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사교육 문제는 개인의 욕망과 직결되어 있다. 경제학의 첫째 원칙은 사람들이 제각각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입시제도를 만들어 낸다고 한들 사교육을 통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가족에 대한 강한 집착과 높은 교육열까지 더해져 있다. 그동안 정부의 ‘입시 개입’이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다.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사교육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소모적인 쪽에 쓰이지 않도록 하고 아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에 쓰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가령 암기식 주입식 사교육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외국어에 능통하게 만든다든지, 독서 능력과 창의력을 키워 주는 사교육은 그래도 생산적인 것이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세계적으로 사교육이 늘어나는 추세다.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그때그때 빠르게 갖추기 위해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처럼 각자가 노후까지 알아서 먹고살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는 능력 계발을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일이 죄가 될 수 없다.

▼싸움 대신 슬기로운 대처를▼

대학의 책임이 막중하다. 대학이 손쉬운 전형방식에서 벗어나 미래의 소양을 갖춘 다양한 신입생을 뽑는다면 사교육의 폐해는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소외계층이다. 대학들은 일정 부분 이들에게 공부할 기회와 여건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일선 고교에서 어쩌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이 이들의 미래를 열어 주는 것이다. 사교육과의 대결보다는 사교육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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